[특파원 칼럼] 보잉 몰락의 교훈
올해 1월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 출장을 위해 지난해 말 비행기 예약에 나섰다. 비행기 출발 시간 변경과 관련해 상담하려고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더니 해당 직원에게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예약하려던 비행기 기종이 과거 사고 이력이 많으니 다른 시간대의 다른 비행기로 예약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사고가 잦고, 그만큼 위험하다면 운행을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직원은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마침 시간대가 맞지 않아 해당 직원이 경고한 비행기종은 타지 않았다. 미국경제학회 취재를 하는 동안 알래스카항공 소속 보잉 ‘737 맥스9’ 여객기가 공중에서 동체에 큰 구멍이 뚫려 비상 착륙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美 제조업 아이콘의 추락

이후에도 보잉엔 악재가 이어졌다. 항공 규제당국 등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고, 아메리칸항공 등 고객사들이 보잉 항공기 구매 중단을 검토했다.

보잉 노조는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13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4년간 임금 35% 인상 등을 골자로 한 잠정 협상안이 마련됐지만, 지난 23일 부결됐다. 국제신용평가사 S&P글로벌레이팅스에 따르면 이번 파업으로 회사는 한 달에 약 10억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

보잉은 미국 제조업의 아이콘이다. 1950년대 707 모델을 상업용 제트기로 출시하며 제트 엔진 비행기를 대중화했다. 100년 이상 기간 동안 상업용 항공기뿐 아니라 군용기, 우주선, 방위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했다. 항공기 제작에 필요한 수준 높은 연구개발 인력과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보잉과의 경쟁에 다른 기업이 뛰어들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랬던 보잉이 현재 존폐 기로에 서 있다. 보잉의 패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재무에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본래의 강점인 항공우주 기술과 안전 문제를 간과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비용 절감을 위해 아웃소싱을 확대하며 품질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떨어진 신뢰는 회복 힘들어

보잉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우주 사업 매각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우주 기업인 블루오리진과 접촉해온 사실도 전해졌다. 각고의 노력이 있다면 노조 파업도, 품질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생명 안전과 관련한 고객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지는 미지수다. 아무리 제품 안전성과 품질을 되찾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고 해도 십수 년간 무너진 신뢰를 다시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소비자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권하는 최접점에 있는 콜센터 직원으로부터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비용 절감에만 집중하다가 제품 품질과 소비자 신뢰를 잃은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제너럴모터스(GM)의 2014년 대규모 리콜 사태,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2010년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도 같은 실수가 반복됐다. 이번 보잉 사태가 보내는 경고 메시지도 엄중하다. 본연의 경쟁력을 등한시한 기업이 어떤 비극을 맞게 되는지 보잉은 다시 한번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