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제조업 경쟁력이 국가경쟁력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제조업 경쟁력지수(CIP) 순위에서 2020년 기준 4위를 기록했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과 함께 글로벌 제조 강국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석유, 정유 4강 체제를 갖췄다. 반도체가 15.6%, 자동차가 11.2%로 쌍두마차 역할을 수행한다. 자동차 1강 체제인 경쟁국 일본과 차별화된다.

미국은 대중국 관세를 대폭 인상하고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 또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기울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신보호무역주의가 글로벌 무역 질서의 뉴노멀이 되고 있다. 제조업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까닭이다.

첫째로 노동생산성 제고가 중요하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22년 기준 49.4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33위다. OECD 평균의 76% 수준이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자본 축적도 이미 선진국 단계에 진입했다. 생산성 향상 없이는 지속 성장이 한계에 봉착했다. 생산성 정체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주범이었다. 낮은 생산성 탓에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노구치 유키오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의 경고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생산성 향상이 제조업 성장 절벽을 타개할 유용한 수단이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노동력을 핵심 자원으로 간주해 생산성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둘째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해야 한다. 높은 청년실업률과 비정규직 비율은 경직적 노동시장과 왜곡된 노사 관계의 산물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2023년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 노동시장은 39위를 기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200개 외국인 투자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6.8%가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고 응답했다. 해고·파견 규제, 경직적 근로시간, 인건비 증가, 잦은 파업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해외로 나간 기업의 국내 복귀가 부진하고 해외 직접투자가 급증한 배경이다. 높은 고용 비용과 덩어리 규제가 기업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 고용 유연성 제고로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 창출에 나서야 할 때다.

셋째로 높은 임금 수준 문제다. 2021년 한국 근로자 평균임금은 4만8922달러로 OECD 회원국 중 19위다. OECD 평균의 91.6% 수준이다. 2020년 74.8%에서 꾸준히 상승했다. 일본보다 높아졌을 뿐 아니라 일본과의 격차가 계속 확대됐다. 낮은 생산성으로 실질임금 상승효과가 경쟁국보다 훨씬 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크다. 성별 임금 격차는 31% 수준으로 회원국 중 1위다. 2017~2022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41.6%로 주요 7개국(G7)보다 높았다.

넷째로 시대착오적 대기업 규제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지난 15년간 국내총생산(GDP)은 두 배 늘었지만, 대기업집단 편입 기준인 5조원 이상은 변하지 않았다. 규제 대상 대기업 수만 2009년 48개에서 올해 88개로 늘어났다. 274개의 각종 규제를 받는다고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기업 비중은 14%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그리스,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보다 낮다. 대외 경쟁력 저하, 국내 진출 외국 기업과의 역차별 문제 등이 심각하다.

다섯째로 전력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제조업은 풍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전력의 안정적 공급이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 조성, 전기차 공급 등으로 엄청난 전력 수요가 창출됐다. 급속한 탈원전 정책과 송배전망 건설 부진으로 전력난이 심화했다. 622조원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전기가 없어 가동할 수 없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지난 정부의 무리한 포퓰리즘적 정책이 초래한 예정된 재앙이다.

제조업은 지속 성장을 견인하는 에스컬레이터 역할을 수행한다. 저성장·저고용으로 고전하는 한국 경제의 마지막 보루다. 제조업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