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시멘트공장을 연간 18만 명이 찾는 상주 최대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킨 명주정원. 경북의 대표적인 ‘제3의 공간’으로 부상했다. 명주정원 제공
버려진 시멘트공장을 연간 18만 명이 찾는 상주 최대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킨 명주정원. 경북의 대표적인 ‘제3의 공간’으로 부상했다. 명주정원 제공
경상북도의 청년 정책으로 성장한 청년 기업이 경북의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을 극복할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8년 전국 최초로 시작한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로 창업한 1세대 창업가들이 새로운 공간과 서비스, 제품을 만들어내면서다. 주인공은 아무도 찾지 않던 농촌 마을의 마늘창고에서 햄버거 메뉴 하나로 연간 8만 명을 유치한 칠곡군 왜관읍 므므흐스버거의 배민화 대표, 경북 성주군 18만 평의 목장에서 캠프닉이라는 새로운 촌캉스 문화로 농업 프랜차이즈 모델을 만든 여국현 팜0311 대표. 고향 상주에 귀촌해 버려진 시멘트 공장을 연간 18만 명이 찾는 상주 최대의 명소로 만든 이민주 명주정원 대표 등이다. 이들 농촌 창업가들은 쇠락한 지방 도시의 공간을 변화시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경상북도의 청년 유입 정책은 이철우 경북지사가 취임한 2018년 본격화했다. 경상북도와 경북경제진흥원이 2021년까지 추진한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는 113개 팀 181명이 창업해 이 가운데 84개 팀 137명이 생존하며 생존율 74%를 기록했다. 19세 이상 39세 이하 경북지역 외 거주 청년을 대상으로 사업화 자금, 맞춤형 교육·컨설팅·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 네트워킹을 위해 최대 2년간 6000만원의 통 큰 지원을 했다. 이 사업은 2022~2025년 경북청춘 창업드림지원사업(129개 팀, 169명 창업)으로 이어졌다. 또 유입 청년뿐 아니라 지역 청년의 유출을 방지하고 정착을 장려하기 위한 시골청춘 뿌리내림 지원 사업(121개 팀, 130명 창업)도 시작했다.

경상북도와 경북테크노파크는 청년 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 창업 3~7년 차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구간에 있는 청년 기업을 지원하는 청년창업 점프업 지원도 시작했다. 영천의 티웰(대표 김건우), 경산의 와룡식품(대표 김경도), 청도의 시그널케어(대표 양동섭), 구미의 라씨(대표 석수민), 경주의 리하이(대표 추혜성) 등이 스케일업(지속성장)에 나서고 있다.

경북의 청년 창업기업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생활인구와 관계인구를 불러들이는 플랫폼이 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마늘창고에서 연간 8만 명이 찾는 버거집으로 변신한 칠곡의 므므흐스버거.  오경묵 기자
마늘창고에서 연간 8만 명이 찾는 버거집으로 변신한 칠곡의 므므흐스버거. 오경묵 기자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1세대인 이들이 바꾼 공간은 프랑스의 ‘제3의 장소’처럼 발전하고 있다. 제3의 장소는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가 사용한 개념으로 제1의 장소인 집이나 제2의 장소인 직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비공식적으로 찾고 싶은 카페, 클럽, 도서관, 서점, 공원 등을 말한다. 편하게 향하고 머물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권인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연구팀장은 ‘프랑스 제3의 장소 지원정책과 보드르빌의 온실 사례’라는 연구에서 제3의 장소에서는 “공유작업장, 메이커스페이스, 공공서비스의 집, 문화 제작소, ‘연대하는 카페, ‘팹랩(fablab)’, 지역 내 문화 플랫폼인 ‘작은 열정’, ‘연결된 캠퍼스’ 등 다양한 주제와 형태의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권 팀장은 “프랑스에서는 3000여개의 제3의 장소가 지정운영되고 있다”며 “지역 주민이 겪는 문제에 대한 대안적 사업도 제안해 실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3의 장소는 또 지역 식품 등 지역생산의 중요성을 높이고 예술 활동, 사회적 편익, 사회통합 정책 등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향한 전환의 핵심 주체로서 역할을 확장해가고 있다.

제3의 장소라는 측면에서 경북지역 1세대 창업가들의 성과는 새로운 청년정책, 인구정책, 지방활성화 대책을 추진하는 데 좋은 사례다. 지방 소멸을 극복하고 새로운 지방시대를 추진하는 경상북도와 22개 시·군, 정부가 관심을 갖고 협력해야 할 이유다.

<로컬의 발견 제3의 장소와 관계인구>라는 책을 쓴 이사야마 노부타카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 정책창조연구과 교수는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경쟁해 이주 정책을 쓴다고 해도 결국은 정해진 인구 범위 내에서 승자 없는 제로섬 게임을 하게 된다”며 “정주인구나 잠시 방문하는 체류인구가 아니라 지역과 지역주민과 다양하게 관계하는 관계인구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철훈 지역과소셜비즈 대표는 “경북의 1세대 창업가들은 새로운 청년들을 불러들여 멘토와 멘티 관계를 맺으면서 창업의 플랫폼이 되고 지방시대의 혁신가로 성장하고 있다”며 “농촌과 지방의 공간을 바꾼 창업가들이 제3의 장소를 중심으로 방문객을 체류인구에서 관계인구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송경창 경북경제진흥원장은 “강원의 ‘속초751샌드위치’는 속초 인구 8만 명이 아니라 속초시를 방문하는 2500만 명을 목표 고객으로 해 성공했다”며 “디지털에 친숙한 청년 기업가들의 성공은 ‘온라인에서는 지방 소멸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성현 경상북도 지방시대정책국장은 “경상북도가 추구하는 지방시대는 지역의 청년이 지역에서 교육받고 취업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만들고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수도권 집중을 막고 국가 균형발전 모델을 만드는 것”이라며 “경북에 유입된 청년이 만든 기업이 지역 또는 외국 청년들과 협업해 테크계의 글로벌 스타트업 못지않게 성장하도록 지방시대 정책을 펴겠다”고 강조했다.

구미=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