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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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직장 내 괴롭힘 판단 기준을 객관적으로 정립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해외·국내 법규와 판정 사례 등을 연구해 불분명한 괴롭힘 판단 기준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모호한 규정 탓에 허위·과장 신고가 계속 늘면서 노·노 및 노·사 갈등이 급증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30일 학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 28일 '국내외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등 사례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연구예산은 3000만원이며 연구 기간은 올해 11월부터 내년 3월까지다.

고용부는 연구용역 발주서에서 "노사 및 노노 간 괴롭힘 판단에 대한 인식차가 있다"며 "갈등을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괴롭힘 여부에 대한 객관적 판단기준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국내외 괴롭힘 판단(판정, 판례) 사례 등을 조사·수집해 판단 기준을 분석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괴롭힘 성립 요건별 또는 행위 유형별 판단기준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현행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대응 매뉴얼의 수정 보완 사항도 함께 검토한다.

이번 연구는 사실상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 관련 규정을 손보고 괴롭힘이 성립하기 위한 지속, 반복성 등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제도(근로기준법)가 신설된 가운데 관련 신고 건수는 매년 증가세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신고가 1만1038건 발생해 전년도 8961건 대비 23.1% 증가했다. 하루 평균 30.2건꼴이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2019년 7∼12월 2130건에서 2020년 5823건, 2021년 7774건, 2022년에는 8961건으로 매년 증가세다. 시행 5년 만에 누적 신고 수는 4만 3446건을 기록했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 실시 이후 신고 사건 중 4만2957건의 처리가 완료됐는데, 검찰 송치된 사건 중엔 350건만이 기소로 이어져 기소율은 0.8%에 그치고 있다. 고용노동청 단계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정(개선지도, 과태료, 검찰송치)되는 비율도 2020년 16.5%에서 2021년 14.1%, 2022년 13.2%, 2023년 12.1%로 감소세다.

반면 처리 완료 4만2957건 중 2만4183건(56.2%)은 '법 위반 없음'(진정 사건 조사 결과), 불출석에 따른 조사 불능, '법 적용 제외'(5인 미만 사업장, 특고 등) 등의 사유로 마무리됐다. '중도 취하'도 1만3009건(30.2%)에 달한다. 거의 10건 중 9건은 고용청 단계에서 괴롭힘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 셈이다.

실제로 임 의원이 수집한 허위 신고 사례에 따르면 개인 사유로 퇴사했으면서 사후 실업급여를 타기 위한 목적으로 괴롭힘으로 신고한 사례, 직원들에게 위협을 하다가 징계받을 상황에 부닥치자 역으로 신고하는 사례, 반차를 못쓰게 한 팀장을 곧바로 신고한 사례, 입사 9일 만에 신고한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민원인 1명이 대상을 바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22번 신고를 한 사례도 발견됐다.

일각에서는 괴롭힘 금지 제도의 이 같은 허점을 정부의 관리 소홀, 부실 감독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기준의 모호함을 배경으로 꼽고 있다.

한 대형 로펌 노동 전문 변호사는 "직장 내에서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신고를 제기하면서 근로자 간 갈등으로 번지고 결국 기업 사내 질서가 심각하게 저해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불분명한 기준 탓에 인사담당자는 물론 근로감독관들조차 판단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올해 공개된 고용부 연구용역 보고서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요건에 지속·반복성을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프랑스, 노르웨이, 호주 등 대부분 해외국가가 괴롭힘 정의에 ‘지속 또는 반복성’ 요건을 두고 있다. 괴롭힘 기준을 명확히 해 예측 가능성과 객관성을 높인 것이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은 "허위 과장 신고가 가해행위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가장 고통받는 것은 노동시장의 약자인 20~30대"라며 "진짜 피해자가 의심받는 일이 없도록 괴롭힘 기준에 대한 연구와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 의원은 "경미한 갈등 문제 발생을 선제적으로 최대한 줄이는 것을 고려해 예방차원에서 제도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