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체류 한국인이 ‘반(反)간첩법’에 걸려 5개월 넘게 구금당하다가 구속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구속된 한국인은 지난해 12월 안후이성 허페이시 자택에서 국가안전국 수사관들에게 연행돼 현지 호텔에 격리 상태로 조사를 받고 지난 5월 말부터는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호텔 격리라고 해도 구금과 다를 바 없다. 삼성전자 출신인 그는 2016년부터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등에서 일하다가 개인 사업을 준비 중이었다고 한다. 국가안전국은 그가 창신메모리 근무 당시 반도체 정보를 한국으로 유출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가 실제로 어떤 행위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제대로 된 사법절차 내에서 조사와 재판을 받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정상적인 법치국가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인권 유린에 가깝다. 중국 외교부가 “법에 따라 위법한 범죄 활동을 적발했고, 당사자의 합법적 권리를 보장했다”고 했지만, 혐의 내용을 명확하게 밝히지도 않고 있다. 가족들은 “지병인 당뇨병 약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할 정도다.

중국이 2014년 반간첩법을 제정한 이후 지금까지 한국인을 이 법으로 처벌한 사례가 없어 의외의 일이긴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올 것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중국은 지난해 7월 반간첩법을 개정해 그야말로 ‘걸면 걸리는’ 법을 만들었다. 간첩 행위 적용 대상을 ‘국가 기밀·정보를 빼돌리는 행위’에서 ‘국가 안보와 이익에 관한 문건·데이터를 제공·절취하는 행위’로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했다. 국가 안보·이익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사실상 어떤 행위에도 자의적 적용이 가능해 중국 거주 외국인, 주재원 등은 불안감을 안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벌어지는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엑소더스’에는 강화된 반간첩법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시진핑 3기 출범 이후 자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불투명한 인신 구속 사태가 이어지는 한 중국의 법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도 사태 해결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