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헌의 마중물] 위대한 관계
우리는 조직생활을 하며 상사와 부하, 동료 등 대인관계에서 수많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만남을 통해 행운을 얻기도 하고, 성장하며 발전한다. 어떤 만남이 좋은 만남일까? 어떤 만남이 우리 인생과 우리 사회를 위대하게 만들까?

짐 콜린스는 최근 발간한 책에서 자신에게 또 다른 아버지나 다름없는 빌 레지어에 대해 얘기했다. 그의 친아버지는 스물세 살 때 돌아가셨는데, 자신에게 옳고 그름의 차이와 가치관 등에 대한 가르침을 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짐 콜린스는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2학년이었을 때 기가 막힌 행운을 거머쥐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귀인을 만난 것이다. 당시 50대에 창업해 성공한 기업가였던 빌 레지어의 강의를 듣게 된 것이다. 그 후 짐 콜린스가 막 서른이 되던 1988년, 빌 레지어는 그에게 용기있는 제안을 했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교수진에 결원이 생기자 짐 콜린스를 추천했고, 그것이 짐 콜린스의 인생을 영원히 바꿨다.

짐 콜린스는 이렇게 비유했다. 당신이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새파랗게 젊은 투수다. 그런데 어느날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뛸 투수를 태운 버스가 고장이 났다. 경기는 곧 시작인데 대체 투수가 한명도 없다. 마침 당신이 우연히 경기장에 있었고 감독이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봐 젊은 친구, 마이너리그 투수라면서? 당장 글러브 챙겨서 메이저리그 경기장에 올라가야겠네”

초짜 투수인 짐 콜린스를 메이저리그 경기에 내보며 빌 레지어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이건 기회라네. 완벽하게 던져주기만 한다면 계속해서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어. 내 말 알아들었나? 자 그럼 나가서 던져!” 그 이후 짐 콜린스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이라는 메이저리그에서 일곱시즌 동안 공을 던졌다.

짐 콜린스는 진짜 행운을 잡았다. "행운은 준비와 기회가 만났을 때 생긴다"라는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학생이 준비돼 있으면 선생님이 나타난다”는 서양의 격언처럼 조직의 리더로서 준비가 돼 있으면 기회는 언제든 잡을 수 있다.

언젠가 빌 레지어가 짐 콜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생을 거래가 연속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고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어. 거래는 성공을 안겨줄 수 있을지 몰라도 인생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관계뿐이라네” 이에 짐 콜린스는 “선생님은 자신이 위대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인하세요?”라고 물었다. 빌 레지어는 “자,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게. 자네가 한 명씩 따로 만나 이 관계에서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이득을 보는지 물어보는 거야. 두 사람 모두 자기가 더 많이 이득을 얻는다고 말한다면 그 관계가 위대한 관계지”

여기서 두 사람의 이득에는 물질적인 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용돈을 줄 때를 생각해 보자. 물질적인 이득을 위해 손주에게 용돈을 주는가. 주고자 하는 마음 그 자체가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사회학자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책 '위대한 만남'에서 류성룡과 이순신의 만남을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만남으로 꼽았다. 이 두 사람이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조선을 보전한 이순신의 수군, 왜를 제압해서 명실공히 최고의 수군으로 우뚝 서게 한 그 이순신을 '역사의 이순신'으로 만들고 존재할 수 있게 한 사람은 류성룡이었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이야말로 조선의 행운이고 천운이었다.

류성룡의 안목은 예리했다. 그는 지인지감(知人之鑑)으로 이순신을 찾아냈다. 1576년 만 31세 늦깎이로 무과에 급제한 후 10여년을 함경도 변방에서 하위무관으로 근무하다 1588년 그의 나이 44세에 종6품의 정읍현감으로 부임한 이순신을 천거해 정3품 당상관인 전라좌수사(수군절도사)로 만들었다. 1591년 2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불과 14개월 전이었다.

놀라운 것은 류성룡은 이순신을 육군이 아닌 수군장수로, 7단계 뛰어넘는 발탁으로 패러다임 전환의 천거를 한 것이다. 후일 징비록(懲毖錄)에 이렇게 적었다. “적군은 수군과 육군이 합세하여 쳐들어 오려고 했던 것인데, 드디어 적군의 기세는 완전히 껶였다. (중략) 이순신이 싸움에 이긴 공이 있으니, 아아, 이것이 어찌 하늘의 도움이 아니겠는가“

우리 인생을 위대하게 만드는 관계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적어도 다음 세가지가 동시에 작용하지 않을까? 그것은 겸손, 신뢰, 장기적 관점이라고 본다. 성공한 후 자만심이 생긴다면 관계는 깨질 것이다. 신뢰도 역시 무한 신뢰가 아닐까? 사심 없이 정직하게 대하면 정직으로 받아 주는 관계가 최상의 조합이다. 그리고 미래지향적 관점이 관계를 끝까지 가게 한다.

상사와 부하, 스승과 제자, 멘토와 멘티, 코치와 고객들이 서로의 인생을 위대하게 만들어주는 관계를 맺는 것이 우리가 진정 원하는 모습일 것이다. 관계를 통해 행운을 얻는 조직의 리더가 되는 길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김영헌 (사) 한국코치협회 회장, 경희대 경영대학원 코칭사이언스 전공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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