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공항 터미널, 60년대 감성의 호텔로 변신… ‘스테이 데어 이프 유 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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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건축가 에로 사리넨이 만든 'TWA 호텔'
20세기 최고의 모더니즘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TWA 비행센터’
20세기 최고의 모더니즘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TWA 비행센터’
1956년 트랜스월드항공(TWA)을 이끌던 항공 재벌 하워드 휴즈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던 에로 사리넨을 만나 특별한 요청을 한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뉴욕 JFK 국제공항에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터미널을 만들어달라는 것. 휴즈의 목적은 ‘희대의 라이벌’ 팬암을 이기는 것이었다. 정부가 항공 요금을 통제하던 시기였던 만큼 가격 경쟁은 불가능했다. 오히려 화려한 터미널에서 항공 여행에 대한 환상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휴즈의 꿈은 1962년 현실이 된다. 사리넨의 손끝에서 태어난 이 건물은 곧바로 JFK 국제공항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새가 날개를 펼친 것 같은 모양의 아치형 지붕, 유선형의 계단 끝에 펼쳐진 빨간 카펫,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비행기의 모습은 항공 여행에 대한 환상을 극대화하기 충분했다. 20세기 최고의 모더니즘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TWA 비행센터’의 탄생이다. ‘20세기 최고’ 공항 터미널이 호텔로
항공 여행의 환상을 팔던 TWA 비행센터는 역설적으로 그 환상을 좇는 사람이 늘어나며 생을 마감한다. 사로넨이 설계도를 잡은 1956년 가장 큰 비행기는 105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었지만, 불과 10여 년 뒤 최대 660명을 태울 수 있는 보잉 747기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항공 여행은 빠르게 중산층으로까지 보편화되며 TWA 비행센터는 포화 상태에 이른다.
JFK 국제공항의 연간 이용객 수는 휴즈와 사리넨이 만났을 땐 350만 명에 불과했지만, 2002년 이미 3,000만명을 넘겼다. 결국 이 건물은 현대적인 새 터미널의 건설 계획과 함께 2002년 문을 닫는다. TWA가 아메리칸항공에 합병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1년 만이다.
17년간 과거의 건축 유산 정도로 남아있던 이 건물은 2019년 ‘TWA 호텔’로 다시 태어났다. 메인 터미널은 호텔 로비와 바, 카페, 매점 등이 있는 거대한 아트리움으로 변신했다. 과거 메인 터미널 양쪽에 있던 탑승동 자리에는 2개의 7층짜리 호텔동이 새로 건설됐다.
터미널과 탑승동을 연결하던 붉은 카펫이 깔린 곡선형의 긴 복도 ‘튜브’는 로비에서 객실로 가는 통로로 탈바꿈했다. 바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칼(톰 행크스)이 FBI에서 도망쳐 조종사복을 입고 비행기로 향하던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좇아가던 그 복도다. 1960년대로 돌아간 듯한 로비
TWA 호텔을 들어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호텔 입구에는 마치 프랭크가 승무원들과 함께 방금 내렸을 것만 같은 오래된 올드카들이 서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엘비스 프레슬리와 레이 찰스 등 1960년대 올드팝이 흘러나온다.
올드팝의 선율을 따라 유선형의 계단을 올라가면 방금 들어온 문 위로 거대한 공항 안내판(행선기)을 볼 수 있다. 물론 LED(발광다이오드)가 아닌 플랩식이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항공사들의 행선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보면, 플랩이 넘어가는 특유의 소리가 귀를 때린다.
호텔의 백미는 정면 거대한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코니’다. 코니는 실제 TWA 항공이 사용했던 1958년형 록히드 컨스텔레이션 프로펠러 여객기다. 스텝카를 통해 과거 영화에서나 보던 코니에 오르면 비행기를 개조한 특별한 칵테일바가 나타난다. 승무원 대신 바텐더가, 비행기 좌석 대신 레트로 감성의 붉은 소파가 있다. 작은 비행기 창문 밖으로는 완공을 1년 앞두고 세상을 떠난 사리넨의 역작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렇다고 객실까지 1960년대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019년 새로 지어진 호텔동은 현대적인 실용성에 방점을 맞췄다. 객실의 유리 통창 밖으로는 JFK 공항의 제4 터미널과 제5터미널에 주기가 된 비행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비행기 소음은 거의 나지 않는다. 유리가 비행기의 제트 엔진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4.5인치 두께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탁자는 주로 침대 옆 혹은 맞은 편에 있는 일반적인 호텔과 달리 바 형태로 침대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덕분에 탁자 앞에 앉아서도 거대한 비행기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JFK 공항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루프톱에서 활주로 보며 수영
호텔 루프톱에는 JFK 공항 활주로가 한눈에 들어오는 인피니티 풀이 있다. 한국처럼 4계절이 뚜렷한 뉴욕 날씨에 맞춰 수온도 조절된다. 하루 평균 16만 명을 태운 1,300편의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JFK 공항을 보며 수영할 수 있는 건 물론 옆에 있는 풀 사이드 바에서는 가벼운 음료와 스낵도 즐길 수 있다. 오전 10시 30분까지는 투숙객들에게만 열리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투숙하지 않더라도 예약하고 이용할 수 있다. TWA 호텔은 언뜻 테마파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객실에는 TWA의 로고가 그려져 있고 상징색인 빨간색의 연필과 노트가 비치돼 있고, 과거 메인 터미널이었던 로비동에는 과거 TWA 항공 승무원 의상을 전시하는 공간은 물론, TWA 굿즈를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도 있다. 하지만 테마파크 느낌 역시 과거 사리넨의 원 설계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당시 사리넨은 TWA 비행센터가 단순 공항 터미널을 넘어 TWA라는 기업의 브랜드를 전시하는 공간이 되길 희망하는 휴즈의 바람을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멀리 떠나보내는 아쉬움에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던 탑승구는 호텔 객실로, 수하물을 찾던 자리는 호텔 로비로 바뀌었다. 하지만 유리창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던 환상을 팔던 공간은,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향수를 파는 공간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뉴욕=송영찬 특파원
휴즈의 꿈은 1962년 현실이 된다. 사리넨의 손끝에서 태어난 이 건물은 곧바로 JFK 국제공항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새가 날개를 펼친 것 같은 모양의 아치형 지붕, 유선형의 계단 끝에 펼쳐진 빨간 카펫,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비행기의 모습은 항공 여행에 대한 환상을 극대화하기 충분했다. 20세기 최고의 모더니즘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TWA 비행센터’의 탄생이다. ‘20세기 최고’ 공항 터미널이 호텔로
항공 여행의 환상을 팔던 TWA 비행센터는 역설적으로 그 환상을 좇는 사람이 늘어나며 생을 마감한다. 사로넨이 설계도를 잡은 1956년 가장 큰 비행기는 105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었지만, 불과 10여 년 뒤 최대 660명을 태울 수 있는 보잉 747기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항공 여행은 빠르게 중산층으로까지 보편화되며 TWA 비행센터는 포화 상태에 이른다.
JFK 국제공항의 연간 이용객 수는 휴즈와 사리넨이 만났을 땐 350만 명에 불과했지만, 2002년 이미 3,000만명을 넘겼다. 결국 이 건물은 현대적인 새 터미널의 건설 계획과 함께 2002년 문을 닫는다. TWA가 아메리칸항공에 합병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1년 만이다.
17년간 과거의 건축 유산 정도로 남아있던 이 건물은 2019년 ‘TWA 호텔’로 다시 태어났다. 메인 터미널은 호텔 로비와 바, 카페, 매점 등이 있는 거대한 아트리움으로 변신했다. 과거 메인 터미널 양쪽에 있던 탑승동 자리에는 2개의 7층짜리 호텔동이 새로 건설됐다.
터미널과 탑승동을 연결하던 붉은 카펫이 깔린 곡선형의 긴 복도 ‘튜브’는 로비에서 객실로 가는 통로로 탈바꿈했다. 바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칼(톰 행크스)이 FBI에서 도망쳐 조종사복을 입고 비행기로 향하던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좇아가던 그 복도다. 1960년대로 돌아간 듯한 로비
TWA 호텔을 들어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호텔 입구에는 마치 프랭크가 승무원들과 함께 방금 내렸을 것만 같은 오래된 올드카들이 서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엘비스 프레슬리와 레이 찰스 등 1960년대 올드팝이 흘러나온다.
올드팝의 선율을 따라 유선형의 계단을 올라가면 방금 들어온 문 위로 거대한 공항 안내판(행선기)을 볼 수 있다. 물론 LED(발광다이오드)가 아닌 플랩식이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항공사들의 행선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보면, 플랩이 넘어가는 특유의 소리가 귀를 때린다.
호텔의 백미는 정면 거대한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코니’다. 코니는 실제 TWA 항공이 사용했던 1958년형 록히드 컨스텔레이션 프로펠러 여객기다. 스텝카를 통해 과거 영화에서나 보던 코니에 오르면 비행기를 개조한 특별한 칵테일바가 나타난다. 승무원 대신 바텐더가, 비행기 좌석 대신 레트로 감성의 붉은 소파가 있다. 작은 비행기 창문 밖으로는 완공을 1년 앞두고 세상을 떠난 사리넨의 역작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렇다고 객실까지 1960년대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019년 새로 지어진 호텔동은 현대적인 실용성에 방점을 맞췄다. 객실의 유리 통창 밖으로는 JFK 공항의 제4 터미널과 제5터미널에 주기가 된 비행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비행기 소음은 거의 나지 않는다. 유리가 비행기의 제트 엔진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4.5인치 두께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탁자는 주로 침대 옆 혹은 맞은 편에 있는 일반적인 호텔과 달리 바 형태로 침대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덕분에 탁자 앞에 앉아서도 거대한 비행기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JFK 공항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루프톱에서 활주로 보며 수영
호텔 루프톱에는 JFK 공항 활주로가 한눈에 들어오는 인피니티 풀이 있다. 한국처럼 4계절이 뚜렷한 뉴욕 날씨에 맞춰 수온도 조절된다. 하루 평균 16만 명을 태운 1,300편의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JFK 공항을 보며 수영할 수 있는 건 물론 옆에 있는 풀 사이드 바에서는 가벼운 음료와 스낵도 즐길 수 있다. 오전 10시 30분까지는 투숙객들에게만 열리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투숙하지 않더라도 예약하고 이용할 수 있다. TWA 호텔은 언뜻 테마파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객실에는 TWA의 로고가 그려져 있고 상징색인 빨간색의 연필과 노트가 비치돼 있고, 과거 메인 터미널이었던 로비동에는 과거 TWA 항공 승무원 의상을 전시하는 공간은 물론, TWA 굿즈를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도 있다. 하지만 테마파크 느낌 역시 과거 사리넨의 원 설계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당시 사리넨은 TWA 비행센터가 단순 공항 터미널을 넘어 TWA라는 기업의 브랜드를 전시하는 공간이 되길 희망하는 휴즈의 바람을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멀리 떠나보내는 아쉬움에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던 탑승구는 호텔 객실로, 수하물을 찾던 자리는 호텔 로비로 바뀌었다. 하지만 유리창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던 환상을 팔던 공간은,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향수를 파는 공간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뉴욕=송영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