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박빙이어서 선제 대응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미국 대선을 닷새 앞두고 국내 산업계는 워싱턴의 대관 인맥 등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커지자 반도체 등 국내 주요 제조 기업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고관세 장벽이 현실화할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은 반도체법(칩스법)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지으면 보조금을 주겠다는 조 바이든 정부의 공약이 뒤집힐 수 있어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7월 대한상공회의소 기자간담회에서 “보조금을 안 준다면 투자 전략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칩스법에 따라 미국 정부로부터 각각 64억달러(약 8조7600억원), 4억5000만달러(약 6200억원)를 지원받기로 돼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전기차 제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조지아주에 완공한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 가동으로 대당 7500달러의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반도체 지원책을 모두 백지화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강조하는 건 보조금을 주지 않더라도 미국 시장에 반도체를 팔기 위해선 시장 논리에 따라 미국에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미국 입장에선 중국과의 반도체 전쟁에서 승기를 잡으려면 한국 일본 대만 등 우방과의 반도체 공급망을 확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2기 정부를 준비하는 핵심 인사들은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을 제조하는 TSMC를 보유한 대만만 해도 중국의 무력 행사 시 가장 위험한 ‘고리’로 불린다. 이 같은 위험 요인을 제어하려면 TSMC의 기술과 인력을 미국으로 옮기거나 대만 방위 능력을 높여야 한다. 후자를 선택할 경우 대만 정부가 돈을 내라는 것이 트럼프 2기 정부의 논리다.

신정은/박의명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