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 바실리카티 가르뎅 피에르가르뎅 CEO. 사진=유끼글로벌 제공
로드리고 바실리카티 가르뎅 피에르가르뎅 CEO. 사진=유끼글로벌 제공
"한국 젊은이들이 패션으로 자기만의 개성을 나타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로드리고 바실리카티 가르뎅 피에르가르뎅 최고경영자(CEO·사진)는 지난 29일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대중들은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그걸 발전시키고자 한다. 이는 피에르가르뎅이 지향하는 바와 부합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패션쇼에 방문한 한국 인플루언서들이 우리 브랜드의 결에 맞는 의상을 골라 입고 왔다"며 "어떻게 보면 특이하고, 일반사람들이 고르지 않을 것 같은 옷을 입고 자신을 뽐내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가르뎅은 브랜드 창업자인 피에르 가르뎅의 조카로 2020년 피에르가르뎅 대표 자리에 섰다. 프랑스 패션계의 거장인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은 같은 해 말 9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는 명품 패션업계에서 최초로 해외시장에 적극 진출,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을 크게 벌여 패션산업을 확장한 선구자로 꼽힌다. 가르뎅은 이 같은 삼촌의 브랜드 철학과 정신을 이어받아 브랜드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전 세계의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는가 하면 지속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패션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된 이날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안다즈 호텔에서 피에르가르뎅 패션쇼가 열린 날이었다. 지난 4년간 파리 패션위크에서 선보였던 컬렉션을 서울에서 첫선을 보이는 자리였다. 피에르가르뎅 컬렉션은 자연과 현재의 환경 문제를 다룬다. 혁신적이고 새로운 디자인과 소재에 대한 탐구를 구현한 것이 특징. 친환경적인 접근 방식을 지향하는 피에르가르뎅은 주로 재활용 원단을 사용한다. 기존 제품들의 '헤리티지 원단'을 사용해 비닐, 울 크레이프, 오간자 같은 상징적인 소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다음은 가르뎅과의 일문일답.

▷피에르 가르뎅 창업주의 어떤 정신과 철학을 계승하는 데 주력했나.

"삼촌이 소천하기 전까지 25년간 호흡을 맞춰왔습니다. 회사 운영부터 직원 대응, 브랜딩 등을 전부 다 함께해 온 것을 토대로 어떻게 브랜드를 이어갈지 고민했습니다. 삼촌은 노련한 사업가였습니다. 그가 로열티를 받고 브랜드명을 빌려주는 라이선스 사업을 통해 브랜드를 세계적으로 키워온 것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걱정은 없었습니다. 다만 임직원들 입장에선 50여년을 삼촌과 일해와서 내가 대표로 취임하는 것이 큰 변화였을 것입니다. 이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진=유끼글로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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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향적 디자인을 담아낸 패션쇼를 진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브랜드의 컬렉션은 항상 미래지향적이었습니다.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항상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소비자들과 소통해왔습니다. 상상이 가미된 미래에 대한 내용을 옷의 디자인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미래지향적인 것은 피에르가르뎅의 DNA입니다. 앞으로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의상을 구현하고 디자인으로 풀어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개성을 다른 이와 획일화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옷은 자기 몸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인격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시장에서 강조하고 싶은 브랜드 가치 또는 특징은.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한국 패션 시장에서 특정 분위기를 정의하긴 어렵습니다. 브랜드마다 개성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제각각입니다. 다만 브랜드가 패션 사업을 전개할 때 각 시장에서 지향하는 바가 바뀌는 게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가야 한다고 봅니다. 브랜드만의 정체성이 확실해야 한다는 뜻인데, 소비자들에게 창의성을 제안하고 여러 문화를 전파해야 합니다. 한국 시장에서도 피에르가르뎅만의 고유한 전통과 특징을 부각한 패션을 선보이면 이에 열광하는 팬층이 생길 것이라고 봅니다.
사진=유끼글로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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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브랜드 목표가 있다면.

"사업 영역 확장에 집중하기보다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개성이 어떻게 하면 더 소비자들과 부합할지를 연구할 것입니다. 피에르가르뎅은 1960년대부터 각종 '스페이스 패션'을 선보여 유행을 선도해왔습니다. 당시 미국과 구소련의 치열한 우주개발 경쟁 분위기에 사회 화두가 된 우주를 모티브로 옷을 디자인했는데요. 이젠 우주와 관련된 여러 주제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디자인해 소비자들한테 접근하는 건 이상한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전 세계적 패션업계 불황 속 각 업체가 나아가야 할 전략은 무엇인가.

"제일 중요한 점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업계에선 많은 디자이너가 지속가능성을 위한 큰 노력을 하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봅니다. 의류 폐기물 문제 등 판매되지 않은 재고에 대한 환경 문제도 만연해있습니다. 이에 환경에 영향을 덜 주는 새로운 신소재와 원단 등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환경을 보호해야 패션업계가 추구하는 지속가능성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