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정유경 회장의 독립경영
부모로부터 경영 DNA를 이어받아 2대 이상 기업을 이끄는 오너 경영인이 많다. 대부분 아버지가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부자간 승계였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 중 예외가 없다.

그런 점에서 신세계그룹은 독특한 길을 택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에 이어 딸인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어제 ㈜신세계 회장이 됐다. 오빠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동일한 직급인 회장으로 두 단계 승진해 이마트 부문과 계열 분리한 백화점 사업의 전권을 맡았다. ‘부전자전’이 아니라 ‘모전여전’으로 불릴 만한 승계다.

정유경 회장은 늘 “어머니가 롤모델”이라고 강조해왔다.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걷기 위해 대학 전공을 미술로 선택했고 외양도 비슷하게 가꿨다. 조선호텔 상무보로 경영 수업을 시작한 20대 때부터 50대 어머니 스타일을 따라 했다. 짙은 눈화장과 빨간 립스틱을 선호하는 것이나 치마 정장보다 바지 정장을 즐겨 입는 모습, 사자머리까지 이명희 총괄회장과 판박이다. 오빠와 달리 공식석상에 잘 나서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하는 경영 스타일도 닮았다.

어머니와 비슷한 방식으로 정유경 회장은 백화점 사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패션업체에 백화점 매장을 내주고 수수료를 받는 기존 백화점 사업 모델 대신 신세계 바이어가 직접 상품을 매입해 판매하는 편집숍을 키워 매출을 늘렸다. 백화점 매장에 미술작품을 대거 전시해 백화점을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라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앞장섰다. 이런 노력이 뒷받침돼 올 상반기 신세계백화점 매출은 5조2900억여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재벌가에서 회장 승진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말 그대로 독립이다. 윗세대의 섭정이 끝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유경 회장의 경영가도에 놓인 과제는 만만찮다. 미국과 일본처럼 한국 백화점업계도 온라인 쇼핑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고급화 전략으로 쿠팡 등의 공세를 막아왔지만 아차 하는 순간에 둑이 무너질 수도 있다. 경영자로서의 능력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