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월 30일 오후 4시 15분

30일 오전 예상치 못한 기습 공시에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0위 기업의 주가가 하한가로 직행했다. 그 영향으로 코스피지수가 1% 가까이 떨어지는 등 시장 전체가 충격에 흔들렸고 주주 게시판은 온종일 들끓었다. 최근 경영권 분쟁으로 시끄러운 고려아연 얘기다.
시장 뒤흔든 고려아연 '증자 폭탄'…묘수인가 자충수인가

○유상증자 폭탄 터뜨린 고려아연

고려아연이 이날 이사회를 열어 총 2조5000억원 규모의 신주 발행을 결의했다. 신주 물량 중 약 20%인 74만6530주를 우리사주조합에 우선 배정하고 나머지 80%를 일반공모 방식으로 배정할 방침이다. 고려아연 측은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유상증자를 통해 국민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했지만 속내는 경영권 분쟁 상대방인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에 맞서 지분율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증자가 성공하면 MBK 연합의 의결권 지분율은 기존 43.9%에서 36.4%로 희석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 우호 지분도 40.4%에서 33.5%로 낮아지지만 우리사주 물량 3.4%가 최 회장 편을 들면 우호 지분은 36.9%로 오른다. MBK 연합을 0.5%포인트 앞서는 것이다. 이번 증자가 상대편의 힘을 빼고 같은 편을 늘리기 위한 이중 포석인 셈이다.

하지만 시장에는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67만원의 신주 발행 가격을 놓고 주주들의 반발이 거셌다. 고려아연 측은 이달 22~24일 거래량과 거래대금에 따른 기준 주가 95만6116원에 30% 할인율을 적용한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날 종가인 154만3000원보다 무려 57% 낮은 가격이다. 150만원이 넘는 주식을 67만원에 아무에게나 나눠주겠다니 기존 주주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고려아연 주가는 공시 직후 하한가로 직행해 108만1000원에 마감했다.

고려아연 측이 유상증자 청약 한도를 특수관계자를 포함한 1인당 11만 주로 제한한 점도 논란거리다. MBK와 영풍 측의 유증 참여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외견상 일반 유상증자를 택해 모든 주주에게 공평한 기회를 줬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참여에 제한을 둬 경영권 방어에 활용한 것”이라며 “전례를 찾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유가증권시장 전체에 충격

시장에선 최 회장 측이 말 바꾸기로 시장을 교란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공개매수를 진행하면서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밝혀놓고 7일 만에 재무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증자를 단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려아연의 재무구조가 악화한 것은 최 회장 측이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주당 89만원의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차입금이 급증한 영향이 적지 않다. 고려아연 측은 주당 89만원에 자사주 공개매수를 단행하면서 지난 23일까지 약 2조750억원을 외부에서 조달했다. 앞서 주당 83만원에 공개매수를 마친 MBK 연합으로부터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대항 공개매수였다. 최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나머지 주주에게 피해를 줬다는 비판을 비껴가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이번 증자 결정이 최 회장 측에 자충수가 될지 모른다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주주들의 반발과 금융감독원 등 당국의 개입으로 번진다면 최 회장 측 우군 이탈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현대자동차(5.0%) 한화(7.75%) LG화학(1.89%) 한국투자증권(0.77%) 한국타이어(0.75%) 등 최 회장 측 우군으로 분류되는 곳의 지분도 이번 유상증자로 대거 희석되고 가치가 급락할 전망이다. 고려아연의 기타 비상임이사인 현대차 관계자가 이날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는 등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MBK 측은 유상증자 결정을 막기 위한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과 주주들의 불만을 결집하는 절차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은 2003년 KCC와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간 경영권 분쟁 사례에서도 경영권 방어 목적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는 위법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차준호/ 박종관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