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이오주 심리학도 알드리치의 골방 그림, 세계를 매혹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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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작가 리처드 알드리치
글래드스톤에서 한국 첫 개인전
“2층 공간 모두 다르게 구성하려 노력
경험과 취향 담은 이미지로 작품 만들었다”
글래드스톤에서 한국 첫 개인전
“2층 공간 모두 다르게 구성하려 노력
경험과 취향 담은 이미지로 작품 만들었다”

글래드스톤이 올해 가장 공들여 준비한 이번 전시에서도 이러한 신념을 엿볼 수 있다. 미국 오하이오에서 온 작가 리처드 알드리치의 개인전 ‘더블 제미니‘를 열고 관객을 맞이한다. 알드리치는 올해로 11년간 글래드스톤과 인연을 맺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한 번도 개인전을 열지 않았다. 부산에서 지난해 단체전에 참여한 게 전부다. 국내에서 아직 그의 이름이 생소한 이유다.
대학에서는 학교 건물을 뒤져 아무도 쓰지 않는 작은 골방을 찾아내 그곳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2003년부터 전업 작가의 길을 걸은 알드리치는 2010년 휘트니비엔날레에서 조각 작품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이후 미국은 물론 유럽을 무대로 다양한 조각, 회화 작업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일본 등을 돌며 본격적으로 아시아 관객을 대면하고 있다. 한국에서 첫 전시를 열게 된 알드리치와 만났다.

처음으로 개인전을 통해 한국 관객을 만나는 자리이기에 그는 작품만큼 전시 구성에도 공을 들였다. 글래드스톤 서울의 지하와 지상 공간 2곳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하나의 건물이지만 마치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여겨지도록 구성했다”며 “전시 제목인 '제미니'가 뜻하는 쌍둥이자리 속 두 인물을 공간으로 표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곤 “아티스트보다 큐레이터가 된 기분이었다”며 웃었다.

관객이 만드는 소리에도 주목했다. 작가는 “지하에 카펫을 깔아놓은 것도 미묘하게 다른 감각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라며 “1층에서는 발소리가 들리지만, 밑에서는 카펫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의 목소리, 공간의 울림도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특히 지하 바닥에 깔린 회색 카펫은 작가의 대학 시절 기억을 담고 있다. 알드리치는 “학교를 다닐 때 미술관 옆 아무도 쓰지 않는 빈 방에서 혼자 매일 작업을 했는데, 그곳에도 이것과 똑같은 회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며 ”관객들로 하여금 나의 과거로 찾아오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특히 음악은 알드리치의 작업을 넘어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은 나의 정체성을 찾게 해 준 존재다. 10대를 지나며 분출하는 감정을 음악을 통해 찾았다"고 했다. 또 "음악은 즉각적인 나의 호불호로 이뤄졌기 때문에 내 감정을 이끌어낸다"며 "그 '날 것'의 감정은 미술 작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음악은 나에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바닥에 놓인 조각들은 2010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석할 당시 제작했던 작품을 가져온 것이다. 그에게 15년 전 비엔날레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알드리치는 "요즘은 1년에 50개가 넘는 비엔날레가 열리기 때문에 그 설렘이 덜한 건 사실"이라며 "어린시절이었던데다 인생에서 가장 큰 비엔날레였기때문에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고 했다. 그 기억의 조각을 가져와 한국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회화들은 대부분 2022년과 2023년에 작업한 것들이다. 오직 1점만 2015년작이다. 알드리치는 "2005년에 열었던 단체전 이후 남은 오브제를 가져와 10년을 '묵혀뒀다' 캔버스에 붙인 작품"이라며 "오브제를 모은 지 20년, 제작한 지 10년 만에 다시 관객에게 선보이는 셈이다"라고 했다.

이번 전시 제목에서도 글래드스톤을 향한 그의 애정이 드러난다. 쌍둥이자리. 작가 자신의 별자리인 쌍둥이자리를 뜻하는 '제미니' 앞에 굳이 ’더블’을 붙인 것. 이에 알드리치는 “갤러리 창립자이자 오랜 동료인 바바라 글래드스톤도 나와 같은 쌍둥이자리라는 데서 영감을 얻어 제목을 지었다“며 ”올해 세상을 떠난 그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