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구라, 인도 6000억 이어 몽골에서 1조5000억원 날렸다 [원자재 포커스]
원자재 중개기업 트라피구라가 또 사기를 당했다고 발표했다. 지난번 인도 니켈 사기 사건에 이어 이번에도 내부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고 있다. 제레미 위어 트라피구라 최고경영자(CEO)가 후임인 리차드 홀텀 천연가스부문 대표에게 자리를 넘기기로 한 가운데 갖가지 악재가 속출하고 있다.

30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스위스 기업 트라피구라는 몽골 석유사업에서 자사 직원의 횡령·사기로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해 11억달러(약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하기로 했다.

트라피구라에 따르면 몽골 지사 일부 직원들이 지난 5년간 데이터와 문서를 조작해 지급액을 부풀리고, 약 5년간 미납 채무를 은폐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신은 "제레미 위어 CEO가 사임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사건이 발생해 회사에 더 큰 압박을 주고 있다"며 "현재는 보수적으로 11억 달러의 손실을 산정했으나 피해 금액 회수 여부에 따라 손실 규모는 줄어들 수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 계산에 따르면, 트라피구라가 기록한 11억달러의 피해액은 몽골의 1년 치 석유 소비량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트라피구라는 매일 독일, 프랑스, 스페인 원유 수요를 합친 것과 비슷한 막대한 양의 원유를 거래하는 탓에 발견이 늦어졌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년간 트라피구라가 '돈벼락'을 맞으면서, 내부 통제에는 소홀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진=로이터
사진=로이터
트라피구라는 작년에도 2022년 '니켈 사기 사건'의 여파로 5억달러(약 69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반영했다. 처음엔 인도에서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으나 트라피구라 직원이 조직적 범죄에 가담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트라피구라는 지난해 직원들에게 평균 35억원의 추가 보너스를 지급하는 등 인색하지 않게 대우했으나 탈선 행위가 잇따르고 있다 .

당시 트라피구라는 인도 기업 TMT 메탈과 니켈 구매 계약을 체결했지만 2022년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후 선적에 차질이 빚어지고 납품이 지연되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트라피구라는 침묵하는 가운데 신용장을 개설한 씨티은행이 송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보증을 취소했다. 부랴부랴 본사 차원에서 로테르담항에 도착한 컨테이너를 검사해보니 니켈은 없고 니켈 값의 20분에 1도 안되는 탄소강으로 가득차 있었다.

트라피구라 본사는 TMT 메탈의 실소유주로 추정되는 인도의 금속 재벌 프라틱 굽타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인도 현지에서도 불법 상품거래로 문제를 일으켰고 심장 문제로 입원했다고 주장하는 등 도망다니기 바빴다. 그러는 동안 트라피구라는 상품 구매자인 중국 샤먼C&D 알루미늄, 미국 헤지펀드 아르젠템 등의 손해배상 요구에 직면했다. 억만장자 부동산 재벌 루벤 형제의 하이픈 트레이딩(Hyphen Trading)에게는 840만달러의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트라피구라가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조사 과정에서 인도 기업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화물 운송 회사는 물론 트라피구라 직원이 공모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심스러운 정황도 속속 드러났다. 결국 트라피구라는 합의로 사건을 마무리하고 있다.

스위스 기업 트라피구라는 세계 최대 원자재 거래 중개 기업으로 한국 고려아연 지분 1.49%를 보유하고 있다. 트라피구라는 지난 3월말에 끝난 2024회계연도 상반기(2023년 10월~2024년 3월)에 순이익 15억 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전년 같은 기간의 55억달러에 비해 70% 이상 감소한 수준이다.

한편 트라피구라는 브라질 원유를 확보를 위해 국영 페트로브라스 관계자에게 뇌물을 건넨 사실이 미 법무부에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 3월 8050만달러의 형사 벌금에 합의하고 4650만달러를 몰수당해 1억2700만달러의 손실을 실적에 반영했다. 5월엔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기소를 해결하기 위해 5500만 달러의 민사 벌금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현일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