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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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불공정행위가 있었는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최윤범 회장 측이 자사주 공개매수 당시 유상증자도 계획됐는데 의도적으로 공시를 누락한 것인지, 관련 사무를 주관한 증권사는 유상증자 여부를 알고 있었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금감원 "고려아연 유상증자, 부정거래 소지"

금감원은 31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자본시장 현안 관련 브리핑을 열고 이러한 내용을 발표했다. 브리핑에서 나선 함용일 자본시장·회계 담당 부원장은 "자사주 매각에 이어 유상증자를 할 것이란 계획을 세워놓고 순차적으로 진행만 한 것이라면 공개매수 신고서엔 관련 내용이 없기 때문에 부정거래로 볼 소지가 다분하다"고 했다.

핵심은 유상증자 계획이 세워진 '시점'과 '의도'다. 고려아연은 지난 29일 이사회를 열고 보통주 73만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일반 공모 형태로 신규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 발행주식 수의 20%에 육박하며 발행예정가 기준 지분가치는 2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2조3000억원은 차입금 상환에 사용될 예정이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해 메리츠증권, 한국투자증권, 하나은행 등으로부터 2조3000억원을 빌렸다. 주주가치 훼손 우려에 주가는 연일 하락했다.

고려아연이 유상증자를 염두에 둔 채 공개매수를 진행했다면 당국은 증권신고서 허위기재, 중요사실 누락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자사주 공개매수 당시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설명서를 통해 "공개매수 이후 회사의 지배구조, 재무구조, 사업내용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장래계획은 수립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유상증자 주관사 미래에셋증권도 조사중

금융감독원. /사진=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
금융감독원. /사진=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
미래에셋증권 등 증권사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이날 오전 금감원은 미래에셋증권이 고려아연 공개매수·유상증자 과정에서 적절한 검토를 거쳤는지, 불공정거래 행위가 있었는지 등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미래에셋증권에 검사 인력을 파견했다. 미래에셋증권은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의 사무취급자다. 유상증자엔 주관사로 참여했다.

함 부원장은 "시장 눈높이에서 유상증자 증권신고서, 불공정 거래 연계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며 "이번 유상증자가 자사주 공개매수 당시 밝혔던 주주가치 제고라는 목적과 부합하는지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위법행위가 확인되면 회사와 증권사에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또 불공정거래가 확인되면 신속한 처리를 위해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됐던 '청약 3% 제한'과 관련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고려아연은 유상증자를 공시하며 청약 물량을 주주당 최대 3%(특수관계인 포함)로 정했다. 시장에선 우군을 다수 모아 MBK파트너스·영풍 연합 지분율을 넘어서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청약자별 한도를 제한했던 사례는 있지만,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청약 물량을 제한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한투자증권 사태 개인·조직 모두 문제점 발견"

당국은 신한투자증권의 '1300억원 투자손실' 관련 입장도 밝혔다. 함 부원장은 "개인의 일탈뿐 아니라 일탈을 막지 못한 조직의 문제도 크다"며 "유동성공급자(LP)는 헷지부서인데 1300억원 손실이 발생할 때까지 거래할 수 있던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금융사마다 내부 통제 체계가 달라 이번 사고가 신한투자증권만의 문제인지, 금융투자업계 전반의 문제인지 분석 중"이라고 했다.

앞서 신한투자증권은 ETF LP 업무 목적과 무관한 장내 선물 매매로 인해 1357억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신한투자증권의 LP 담당자는 이 같은 손실 사실을 감추기 위해 회사에 정상적인 거래인 것처럼 허위로 보고했고, 신한투자증권은 2개월이 지난 이달에야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해 금융감독원에 보고했다. 지난 14일 금감원은 신한투자증권에 검사반을 파견해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두산그룹, 증권신고서 재검토"

금감원은 두산그룹의 증권신고서도 다시 검토한다. 앞서 금감원은 두 기업의 합병 증권신고서를 두 차례에 걸쳐 정정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양사는 기존엔 시가를 기준으로 정한 합병비율을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해 재산정한 증권신고서를 지난 21일 새로 제출했다. 증권신고서 효력 발생 전 두산은 증권신고서를 재차 정정했다. 두산로보틱스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강화하기 위해 향후 외부 평가기관을 추가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함 부원장은 "금감원은 가치산정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 다만 회사를 합병할 때, 합병 비율을 어떤 방식으로 정했고, 왜 이 방법을 썼는지 자세히 기술한 후 투자자가 합리적인 판단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시가를 기준으로 한 가치 산정은 일부 문제가 있어 제도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브리핑을 진행한 배경에 대해 함 부원장은 "기본적으로 상장회사 영업, 조직 개편 등은 시장 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타당하지만 최근 상장 법인의 이사회 멤버가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이고 정당한 근거를 갖고 의사결정을 하는지 강한 의구심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문제는 궁극적으로 자본 시장 핵심 화두인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지배구조 이슈와 맞닿아 있고, 자본시장 수준 향상과 개혁 의지를 시험케 한다"며 "시장과 투자자의 기대에 크게 어긋날 수 있어 당국으로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고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