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한강의 소설, 영화와 만나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결정된 지 엿새 만에 그의 책이 100만 부 팔린 것은 어찌 보면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한국문학 최초로 받은 노벨상이며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한강의 작품은 인물의 상처를 뜨겁게 체험하면서 읽도록 한다. 하지만 작품의 진정한 맥락과 미학적 성취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려운 소설이 영화화됐을 때 원작의 메시지가 더 잘 이해되기도 한다.

한강 소설이 영화화된 경우는 어떨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임우성 감독의 장편 영화 ‘채식주의자’(2009)는 ‘선댄스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작품집 속 세 편의 연작, ‘채식주의자’에서의 남편, ‘몽고반점’에서 형부, ‘나무 불꽃’에서 언니 인혜를 초점화자로 서술된 원작의 내용을 객관적인 카메라의 시선으로 한 영화에 담았다. 육식에 대한 악몽에 시달리다 채식주의를 선언한 영혜(채민서), 비디오아티스트 형부 민호(김현성), 인내심의 화신인 언니 지혜(김여진, 소설의 인혜)를 중심으로 원작 소설의 사건을 충실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폭력적인 현실에 저항하려는 영혜의 내면이나 예술적 갈등을 지닌 형부의 심경을 그리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정사 장면도 불필요하게 길어 아쉬움을 남긴다.

작품집 ‘내 여자의 열매’ 속 ‘아기 부처’(1999)를 영화화한 중편 영화 ‘흉터’가 임우성 감독 연출로 2011년 산세바스티안영화제에 초청됐다. 남편인 뉴스 앵커 상협(정희태)의 불륜으로 상처받은 동화 일러스트레이터 선희(박소연)의 상처와 극복 과정을 통해 사랑의 미묘한 감정을 그렸다. 단편영화 ‘여수의 사랑’(1994)은 1998년 정순애 감독 연출로 가족으로 인한 상처를 가진 정선이 여수발 기차에 실려와 서울역에 버려진 자흔과 동거하게 되면서 자흔에게 상처를 입혀 떠나게 만들지만, 그녀를 생각하며 여수로 밤 기차를 타고 가는 내용이다.

이들 영화 모두 작품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해외 초청을 받은 것은 원작의 서사적 탁월함 때문으로 보인다. 한강 소설의 시적이고 탐미적이며 뛰어난 내면 묘사는 영화화될 때 새로운 영화적 문법으로 재창조돼야 하는 것이다. 감독의 미장센, 즉 등장인물의 동작, 소품, 무대 장치, 조명, 카메라 위치, 촬영 각도 등을 구성하는 시각적 연출 미학(美學)에 따라 작품성이 결정된다. 특히 광량을 조정하는 조명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렘브란트의 ‘야경’에서 빛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앞으로 한강 작가의 다른 작품이 영화화될 때 탁월한 미장센을 구현하는 감독이 연출한다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