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초박빙. 3일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이 대혼전 양상이다. 어느 언론도, 어떤 전문가도 특정 후보의 확실한 우세를 점치지 못한다.

팀 월즈 민주당 부통령 후보의 표현처럼 "이상한(weird)" 일일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의 적', '괴짜', '폭군', '독재자' 등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이름 뒤에 따라붙는 무시무시한 수식어들 때문이다.

2016년 혜성처럼 당선되고 2020년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배한 트럼프가 2024년에도 여전히 건재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미국의 히틀러"(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를 유력 후보로 지탱하고 있는 걸까?

한경닷컴은 베스트셀러 'K를 생각한다'의 저자인 청년 논객 임명묵 작가와 청년 정치단체 'AGENDA 27'의 이석현 대표로부터 미 대선의 시사점, 나아가 우리 정치가 주목해야 할 점을 들어봤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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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트럼프에 대한 미디어의 부정적 여론과 달리 '트럼피즘'은 여전히 강력하다. '왜'인가?

임명묵 : 트럼프가 2016년에 충격적인 승리를 거뒀을 때 많은 사람이 러스트벨트를 이야기하면서 중산층을 대량으로 만들어주던 제조업 일자리의 약화라는 점을 지적했다. 경제, 계급에 기반한 분석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백인 남성 노동 계급보다 더 어려운 여러 하위 계층들이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에는 문화적인 불만을 빼놓고는 설명이 어렵다. 쉽게 말해 다들 미국이라면 우리가 생각했던 삶의 형태가 있다. 안정적 일자리를 바탕으로 교외의 단독주택에서 꾸린 ‘정상 가족’.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로 대표되는 문화 코드들.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던 문화적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불만이다.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부터 쭉 이어져 오는 흐름으로, 이민, 인종, 젠더, 성소수자를 둘러싼 이슈들이 정치를 주도하게 됐고 이내 기존 '미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상이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소위 칼리지 타운이나 고소득 일자리가 집중된 대도시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문화적으로 미국의 상을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 이 위기감이 트럼프를 지탱하는 주요 축이라고 본다.

이석현 : 트럼프의 유세를 보면 늘 4가지 키워드로 수렴된다. 인플레이션, 관세, 이민,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인플레이션과 관세는 '세계화'에 대한 반발이고, 이민과 DEI는 이른바 'Wokeism'에 대한 비판이다. 정리하면 전자는 경제 문제고, 후자는 문화에 관한 문제다.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이 두 가지 축이 모두 강력하게 작동하는 결과다.

특히 경제 문제는 토론의 영역이지만, 문화 영역은 정서적 동인을 일으키는 불구덩이다. 내전에 가까운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다. 나아가 트럼프에 대한 흑인, 라틴계 지지율이 높아진 이유도 이 문화적 갈등의 결과일 수 있다. 전통적 지지 성향에서 벗어난 '엘리트 vs 대중'이라는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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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실 이러한 흐름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이민'이라는 의제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임명묵 : 한국에 문화전쟁 의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22년 대선이었다. 이때 '이대남' 돌풍이 불면서 젠더 갈등, 페미니즘 등 이슈가 정치권으로 올라왔다. 다만 정치권에서 이를 지지 확보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덮어버렸기 때문에 현재 문화전쟁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해외와 달리 한국에서 문화전쟁을 통한 보수 정당 지지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분단'의 영향도 있다. 서구권의 경우 냉전이 끝나면서 '자본주의 vs 공산주의', 이어 '신자유주의 vs. 사민주의' 구도가 허물어졌다. 그리고 새로운 문화전쟁 의제들이 등장했다.

한국의 경우 20세기 냉전 시대에 형성됐던 보수파의 반공주의, 진보파의 민주화론 구도가 여전하다. '조중동·검찰의 반공 독재', '종북, 빨갱이' 같은 관성적인 세계관이 깨지지 않고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석현 : 정치공학적으로만 보면 한국의 4050, 6070의 정치 성향은 쉽게 바뀌기 어렵다. 집단적 세대 경험이 워낙 강력해서 세대 내 다수파 구조가 잘 바뀌지 않는다. 2030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생물학적으로 젊어서가 아니라 캐스팅보터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기획의 취지처럼 2030의 정치 관심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2030이 크게 반응하는 이슈가 있다면 거의 유일하게 문화전쟁에 관한 의제다. 성별 갈등뿐만 아니라 문화콘텐츠에 대한 규제를 둘러쌓고도 매번 첨예한 전쟁이 펼쳐진다. 임명묵 작가의 말처럼 우리 정치가 이를 방치하고 있지만, 여타 해외 선진국처럼 그 에너지는 늘 강하게 잔존하고 있다. 대의 되지 못한 에너지에 기반한 한국형 트럼프의 등장이 언제나 가능한 이유다.

임명묵 : 동아시아 문화권 자체가 해외에 비해 문화전쟁이 이슈화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러시아나 이스라엘, 이란, 터키, 인도 등의 경우 전통주의나 종교적 보수주의를 내세우면서 소위 '극우'가 약진한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유교 문화는 세속적이기 때문에 종교적 정서가 약하다. 또 반대로 보수적인 면도 크기 때문에 서구권의 문화적 진보주의도 동아시아에서는 보수적 형태로 굴절되어 받아들여진다. 이것이 한국에서 문화전쟁에 대한 정치적 토론이 비교적 약한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대만, 일본, 한국 모두 종교적인 전통주의자들이 정당을 구성해서 포퓰리즘적인 세를 모으는 경우가 없다. 진보주의자들은 보수화되고, 보수주의자들은 세속적인 면이 크기 때문에 '한국적인' 독특한 형태로 영미 서구권의 담론들이 재해석되고 있는 셈이다.

이석현: 결국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일관된 세계관으로 대변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화적 반발을 수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정치가 특히 우리 보수정당이 그 작업을 수행할 만큼 문화전쟁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지는 않다.

이민 문제의 경우에도 보수 정당의 정치인들이 동화주의보다는 다문화주의에 기반한 메시지를 내곤 한다. 아직은 이민자를 둘러싼 갈등이 크지 않지만, 대구 북구의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에서 보듯이 상징적인 사건은 벌어지고 있다. 이민자의 수가 늘고 있고 이민자 유입의 불가피성이 있는 만큼,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찾아올 갈등 의제라고 생각한다.
사진='AGENDA 27'
사진='AGENDA 27'
한편, AGENDA 27은 이같은 주제로 오는 3일 오후 2시 국회에서 특강을 주최(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실 주관)한다. 1부 강연에서는 임명묵 작가가 '글로벌 문화전쟁 현황'을 주제로, 2부에서는 '단단한 개인' 저자인 이선옥 작가와 임 작가, 크리에이터 이상민씨가 대담한다. AGENDA 27은 이기인 개혁신당 수석 최고위원, 김지나 전 경기도의원, 이석현 전 청와대 행정관이 창립한 단체다. 2027년 대선에서 주요하게 다뤄야 할 의제를 다루겠다는 의미다. 행사 참석 신청은 페이스북 AGENDA 27에서 링크를 통해 할 수 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