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과 가치투자 전략을 완성한 고(故) 찰리 멍거 부회장(왼쪽).  /한경DB
벅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과 가치투자 전략을 완성한 고(故) 찰리 멍거 부회장(왼쪽). /한경DB
“믿지 못할 사람이 되세요. 맡은 일을 대충 하세요.”

“역경을 만나 좌절했을 때, 엎드린 채 그대로 누워 있으세요.”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얻는 간접적인 교훈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책마을] 멍거 "투자 비결? 그냥 깔고 앉아 있는 것"
198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찰리 멍거 전 벅셔해서웨이 부회장(1924~2023)은 이 같은 독특한 축사를 남겼다. 대부분 졸업식 축사는 행복하게 사는 법이나 성공하는 법 등을 늘어놓기 바쁘지만 멍거는 반대였다. 비참하고 불행한 삶으로 이끄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역설적으로 그 길을 피하기를 강조하는 수사법을 사용했다. 이 축사는 약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가난한 찰리의 연감>은 명연사로 알려진 멍거의 강연 중 유명한 11개 강연을 엮은 책이다. 그 밖에 청중과의 질의응답, 소년 시절부터 엄청난 재정적 성공을 거두기까지의 생애, 투자 원칙과 동업자 워런 버핏의 회고 등이 담겼다. 2005년 초판 출간 후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으나 한국어판 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멍거는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다가 버핏으로부터 동업 제안을 받고 투자 세계로 입문했다. 두 사람은 망해가던 섬유공장 벅셔해서웨이를 시가총액 1조달러(2024년 9월 기준)가 넘는 투자사로 성장시켰다.

멍거는 강연을 통해 본인의 투자 원칙을 설파했다. 그는 투자하기 전에 자신이 잘 알고, 자기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뭔지부터 파악했다. 예컨대 멍거는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며 하이테크 분야엔 좀처럼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일단 분야를 선택한 뒤엔 큰돈을 투자했다.

이는 널리 알려진 멍거의 투자 성향으로 이어진다. 통 크게 사고 자주 매매하지 않는 방법이다. 멍거는 “소수의 뛰어난 종목에 투자하고 그냥 깔고 앉아 있으면 개인에게 이득이 있다”며 “증권사에 내는 수수료가 줄고 헛소리를 덜 듣게 된다”고 말했다.

멍거는 투자 시 기업 하나만 보는 게 아니라 그 기업이 속한 환경과 구조를 포괄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1996년 7월 한 비공식 강연에서 코카콜라가 탄생한 1884년으로 돌아가 이 기업을 2조달러짜리로 성장시키는 가상 도전을 예시로 들었다. 여기에서 그는 매력적인 상표명을 정하는 문제부터 경영자의 역량, 가격 통제권, 세계적 유통망 확보 등 사업 성공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설명했다. 이런 조건을 갖춘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논리다.

멍거의 강연 내용은 투자뿐 아니라 역사, 심리학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든다. 2023년판 출간을 앞두고 멍거가 전면적으로 재집필한 강연문 ‘인간적 오판의 심리학’에선 비합리적 판단을 내리게 하는 인간의 심리 경향을 분석한다. 예를 들어 과잉 자기 존중 경향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내린 결정에 과도한 애정을 가지도록 해 오판하게 한다. 본인이 그 시장에 투자하고 그 사람을 뽑기로 결정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쁜 시장을 낙관하며 나쁜 사람을 선호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멍거 특유의 유머와 재치, 통찰이 섞인 강연문을 읽은 후엔 버핏이 이 책 서문에 남긴 ‘동업자 선택에 관한 조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먼저, 당신보다 더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을 찾아라. (중략) 먼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안 꾸준히 즐거움을 더할 사람과 동행하라.”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