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족을 찾아가 죽여버리겠다'는 얘기도 들은 적 있어요."

서울 관악구 한 지구대에 근무하는 40대 A 경위는 "주취상태로 민원을 제기한 이가 근 한달동안 지구대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고소 고발 반려 제도가 폐지되면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시민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게 현장의 설명이다. A 경위는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퇴사를 결심하는 순경을 3년새 다섯 명 봤다”고 전했다.

이 같은 사례는 경찰만의 문제는 아니다. 폭언, 협박이나 성희롱 등 도를 넘는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공직자들이 늘고 있다. ‘김포 공무원 자살사건’과 같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하는 사례도 줄잇는다. 공직자들의 신체와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악성 민원을 근절시키는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악성 민원 급증세

5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2023년 접수된 공직자들이 관리하는 '특별 민원'은 3116건으로 2022년 2463건 대비 27.9%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특별 민원이란 폭언 폭행, 성희롱 등으로 고통을 유발하는 악성 민원을 일컫는다. 최근 5년간 발생 건만 3만1105건에 달했다. 공무원 노조 관계자는 “욕설을 듣는 게 일상다반사인 공무원들이 (신고하지 않고) 그냥 넘기거나 드러내지 않는 실정을 감안하면 실제 악성 민원은 집계된 수치의 몇 배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된 악성 민원은 공무원에 대한 폭언, 성추행 등이 있다. 특히 최근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악성 민원이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좌표 찍기’가 대표적이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인이나 주위 인맥을 동원해 해당 민원인에게 민원 폭격을 가하는 식이다.

공무원들이 목숨을 끊을 만큼 정신적 피해에 시달린다. 2011년 8명이던 공무원 자살 순직 신청자 수는 2023년 31명으로 늘었다. 대부분 악성민원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사례다.

지난해엔 경기 김포의 한 주무관이 김포한강로 부근 포트홀 긴급보수 공사와 관련해 50건에 달하는 항의 민원에 시달리다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효성 없는 보호장치, 공무원 인기는 '뚝'

공무원들을 악성민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5월 '악성민원 방지와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했지만 유명무실하다.

이 조치는 전국 읍·면·동 센터의 경우 의무적용 대상이 아니다. 현장 민원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일선 공무원의 피해를 막기엔 한계가 있는 셈이다. 공무원들은 내용 대부분이 악성 민원인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일 뿐, 실제 피해를 입은 공무원에 대한 구체적 구제책이 없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정 속에서 공무원에 대한 인기는 날로 시들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 경쟁률은 21.8대 1로 1992년(19.3대 1) 이후 3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였다. 끊임없는 악성 민원에 공직에서 이탈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작년 공무원 임용 기간이 5년이 되지 않은 퇴직자는 1만 3566명으로 지난 2019년(6500명) 대비 두배 이상 늘었다. 임용 기간 10년 이내 퇴직자도 2019년 7817명에서 지난해 1만 7179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