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칼럼]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다급해졌다
북한 김정은이 2017년 선언한 ‘핵무력 완성’에 도달하려면 핵심 과제들이 남아 있다. 여러 종류의 미사일, 방사포에도 호환해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된 표준 모델을 개발하고 소기의 폭발력을 입증해야 한다. 100만 분의 1초에 핵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기폭장치, 다탄두개별유도(MIRV), 극초음속미사일의 정밀한 목표 유도 등 기술 확보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대기권 진입 때 6000도 이상의 고열을 견뎌내야 하는 기술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지난해 고각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낙하 때 불빛이 갈라져 재진입 실패로 추정됐다. 대기권 재진입에 걸리는 시간이 고각보다 더 긴 정상각도 발사는 훨씬 높은 기술적 난도를 요하는데, 북한은 한 번도 실험하지 않았다. 요컨대 최근 고각 발사한 신형 ICBM이 최종 완결판이라고 하나 실제 그런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관건은 북한이 러시아 파병 대가로 이 기술들을 받을 수 있느냐다. 핵기술을 전수하는 데 부정적이었던 러시아는 김정은이 파병해 피를 흘린다면 도움을 줄 수밖에 없다. 지난 1일 북·러 외무장관 대화에서 미국과 동맹국에 맞선 김정은의 조치에 대한 러시아의 ‘전적인 지지 표명’은 그 가능성을 높여주는 증표다. 김정은이 이 기술들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다면 핵보유국 행세를 하며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러시아가 받쳐줄 것이다. 유엔 제재는 형해화되고, 북핵 폐기는 돌이킬 수 없다.

이는 한반도에 심각한 무력 불균형을 가져온다. 미국의 핵우산이 받쳐준다지만 정권에 따라 파도를 탄다. 자체 핵무장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그 후폭풍 때문에 여차하면 핵무장이 가능한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부터 확보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걸림돌은 한·미 원자력협정 족쇄다. 2015년 개정된 협정은 미·일에 비해 훨씬 제약이 많다. 사용 후 핵 재처리부터 그렇다. 미국은 재처리 때 나오는 플루토늄의 핵무기 전용 우려로 파이로프로세싱 연구 일부만 제외하고 불허한다. 사용 후 핵연료를 영국과 프랑스로 싣고 가 플루토늄을 제외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재반입해 보관해야 한다. 우라늄 농축도 20% 미만만 할 수 있는데 이마저 미국과의 협의 과정이 까다롭다. 핵무기용 고농축은 불허다.

반면 일본은 1968년 재처리 권한을 얻었다. 1988년엔 재처리와 플루토늄 전환 및 핵연료 제작 공장 등을 둘 수 있는 포괄적 동의까지 확보했다. 이를 통해 일본은 핵탄두를 6000개가량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관하고 있다. 우라늄 농축도 20% 미만은 전면 허용받고, 합의 시 고농축도 가능하다. ‘도라이바만 돌리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 허세가 아니다. ‘핵무기 불보유 정책을 취하지만 기술적 능력은 보유한다’(1969년 작성 기밀문서)는 전략 아래 장기간 미국을 상대로 한 치밀한 외교 노력의 결과다.

한국은 9년 전 협정 개정 때에 비해 훨씬 위급해진 안보 상황을 감안하면 2035년 협상 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조태용 국정원장에 이어 조현동 주미대사도 조기 개정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핵 보유 역량 확보의 시급성을 인정한 것이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고도의 설득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한·미 안보장관 회담에서 확인됐듯 ‘한국도 비핵화 유지’가 조 바이든 행정부의 뜻이다.

다만 미국 내 변화 기류가 감지되는 것은 기회다. 신냉전 구도에서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러시아에 의존하는 원전 연료 공급망은 위험하다. 핵 폭주하는 북한과 최대 핵탄두 보유국 러시아의 연대에 대한 미국의 부담감도 커졌다. 전 세계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데 대한 피로감이 카멀라 해리스 후보 참모들 발언에서 감지된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은 상수로 보고, 그의 거래 기술인 ‘지렛대를 사용하라’를 역이용하는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 재처리 기술과 우라늄 농축시설 확보 등 자체적인 준비도 해놔야 한다. 북한의 극초음속 핵미사일이 1분 내 우리 머리 위로 날아오는데, 언제 찢어질지 모르는 핵우산에만 의존할 수 없다. 사용 후 핵연료가 포화상태에 도달했다는 점도 개정이 시급한 이유다. 안보 외교만큼은 정략적 셈법을 떠나 정치권 뒷받침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