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도 전략물자 독자 수출통제 길 열렸다
정부가 대외무역법 시행령 개정을 완료하면서 독자적으로 첨단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에 나설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미국 정부가 요구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양자컴퓨터, 반도체 제조 등 첨단 기술에 대한 수출통제에 동참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정부는 대중 압박 이행에는 아직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5일 미국 대선 결과와 관계 없이 미국의 수출통제 공조 요구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무역법 개정 완료...독자 수출통제 가능해져

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7월 산업부가 입법 예고했던 대외무역법 시행령 개정이 지난 달 8일 완료됐다. 바세나르체제, 핵공급국그룹, 미사일기술통제체제 등 국제수출통제 체제에서 합의된 품목에 대해서만 수출 통제가 가능했던 것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수출통제를 가능케 하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 개정안의 핵심 내용이다.

이번 개정에서 정부는 ‘국제수출통제체제에서 논의된 안건에 대해 다수의 회원국이 수출통제 조치를 취하거나 수출통제 조치를 지지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공조’까지도 수출 통제 대상인 전략물자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수출통제는 안보를 목적으로 특정 품목, 기술의 수출을 금지, 제한하는 조치를 뜻한다. 그간 수출통제는 1996년 출범한 다자간 수출통제협의체인 ‘바세나르체제’에서 42개 회원국이 합의한 품목에 대해서만 이뤄져왔다. 바세나르체제에서 수출통제 품목의 추가는 회원국의 만장일치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이번 개정을 통해 일부 국가들의 공조만으로도 수출통제가 가능해졌다.

이 같은 변화는 미중 갈등 속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이 중국, 러시아 등에 대한 기술 통제를 강화하는 흐름 속에서 나타났다. 미국은 러시아를 포함한 42개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있어야만 수출통제가 가능한 바세나르체제를 우회하기 위해 2023년 ‘C-1’ 개념을 제시했다. 만장일치가 아니라도 그에 준하는 회원국 동의가 있다면 수출 통제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으로, 이번 대외무역법 개정을 통해 한국 역시 이 개념을 법에 반영한 셈이다.

○美 공조 압박 속 韓선택에 관심 집중

법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한국이 중국, 러시아를 겨냥한 수출 통제에 나설지는 아직 미지수다. 지난 9월 미국은 양자컴퓨터와 반도체 제조 등 24개 품목을 수출통제 대상에 추가하면서 영국, 프랑스, 일본 등 3개국에 대해선 수출 허가 의무를 면제했지만 한국은 면제 대상국에서 제외한 바 있다.

3개국은 이미 올해 상반기에 미국이 제시한 24개 품목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를 마친 국가들이다. 일례로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주사전자현미경(SEM), 양자컴퓨터 등 4가지 품목 관련 기술을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SEM은 중국이 첨단 반도체 설계 배치도를 추출해내는데 필요한 장비다. 우방국 중에서도 대중 수출통제 전선에 동참한 국가에 대해 대우를 차등화한 것이다.

예외 조항을 적용 받기 위해선 한국도 독자적으로 수출통제 안을 내놔야 하지만 적극적으로 미국과 보조를 맞추긴 고민스러운 실정이다.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 섣부른 수출통제 조치가 중국 등 상대국의 보복으로 이어지며 우리 산업에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어서다. 산업부 관계자는 "수출통제 확산이 우리 경제의 잠재적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면서도 "아직 미국의 수출통제 동참 요구에 응할지 답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중 수출통제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앞으로도 강화될 전망이다. 산업부 산하 씽크탱크인 무역안보관리원이 최근 발표한 '미 대선 이후 미국 수출통제 정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와 해리스 어느 쪽이 이기든 중국을 겨냥한 수출통제는 강화될 전망이다. 1기 정부 시절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 SMIC 등 특정 중국 기업을 집중적으로 통제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반도체 등 첨단 분야를 대상으로 한 다자간 통제를 강화했다.

연구진은 "한국도 미국의 수출통제와의 공조 요구 및 수출통제 다자화에 대응해 우리의 제도를 유사한 수준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 기업들도 미국의 수출통제 리스트(Entity List)에 포함된 중국 기업과의 거래 위험을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