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AMAT, 반도체 장비 공급망에서 중국산 완전 배제
세계 3대 반도체 장비 제조사로 꼽히는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와 램리서치가 공급망에서 중국 업체를 완전히 배제하기로 했다. 첨단 반도체 장비를 제조할 때 ‘중국 리스크’를 없애려는 미국 정부 지침에 따른 조치다. 저렴한 중국산 부품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반도체 생산 비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산 쓰면 공급업체 배제”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AMAT와 램리서치는 최근 자사 공급업체들에 ‘중국산 부품을 대체하지 않으면 공급업체 지위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급업체들은 투자자 및 주주 명단에도 중국인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미국 뉴욕주에 있는 반도체 처리 시스템 개발사 비코 역시 공급업체에 새로운 중국산 부품 사용을 즉시 중단하고, 내년 말까지 기존 중국 공급업체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지침을 서면으로 보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AMAT는 공급업체 약 70곳 중 반도체 재료 회사 장쑤요커기술, 석영 가공 기업 장쑤퍼시픽쿼츠, 정밀기계 제조업체 쿤산킹라이하이제닉머티리얼 등에서 직접 부품·장비를 공급받는다. 2차 벤더 이하로 내려가면 공급망에 포함된 중국 기업은 수십 개가 넘는다. AMAT는 “부품의 대체 공급처를 파악해 공급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최첨단 반도체 및 반도체 제조 장비 공급망에서 중국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미국 당국이 개입한 결과로 해석된다. WSJ는 “미국 관료들은 자국 기업이 부품 공급을 중국에 의존하면 중국이 위기 상황에서 미국에 대항할 카드를 손에 쥘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자국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가 중국 공급업체에 기술 세부 사항과 계획을 공유하려면 라이선스를 취득하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에는 내년까지 현재 공급업체를 유지할 수 있는 임시 라이선스를 부여했다. 올여름에는 중국 밖 공급업체도 모회사가 중국에 있으면 이러한 규정을 적용한다고 못 박았다.

○반도체 제조 비용 오를 수도

AMAT가 공급망을 정리하면서 중국 기업도 곤경에 처했다. 랴오닝성에 있는 선양포천정밀장비는 AMAT에 장비를 납품할 계획으로 올해 싱가포르 공장을 설립했으나, 아직까지 AMAT의 공급 승인을 받지 못했다. 대니 로 선양포천정밀장비 싱가포르 사업 담당자 이사는 “공장의 (수출) 범위를 미국 장비 제조업체를 넘어 전 세계 장비 제조사로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중국 부품 업체도 제3국에 합작회사나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등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WSJ는 “중국을 배제하려는 노골적인 움직임은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시장인 중국의 정책 입안자를 분노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중국산 부품 배제가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비슷한 가격에 대체 부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파운드리 기업이 AMAT의 최대 고객사다.

○동맹국으로 확대되는 수출 규제

미국 당국은 자국 반도체 장비 제조사의 대(對)중국 수출 통제도 더욱 강화하고 있다. AMAT는 최근까지 수출 통제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상무부가, 지난 5월에는 매사추세츠주 지방검찰과 증권거래위원회(SEC)가 AMAT를 소환했다. 한국을 거쳐 중국 반도체 제조사 SMIC에 제조 장비를 수출했다는 혐의다.

올해 화웨이가 반도체 수출이 통제된 가운데 만든 첨단 스마트폰 메이트60프로에도 SMIC, AMAT, 램리서치 기술이 활용됐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지난해 회계연도 1분기(2~4월) 17.0%였던 AMAT의 중국 매출 비중은 올해 1분기 44.7%로 높아졌다.

미국이 동맹국을 대상으로도 수출 통제를 더욱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지난달 22일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제조사인 네덜란드 ASML의 크리스토프 푸케 최고경영자(CEO)는 “지정학적 상황을 보면 미국이 동맹국에 더 많은 통제를 가하라고 계속 압박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며 유럽연합(EU) 차원의 대응을 촉구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9월 ASML의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수출을 규제한다고 발표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