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기술 1만건…서울시가 깨웠다
“25년 넘게 하이드로겔이라는 성분을 연구했습니다. 논문만 쓰고 끝내기 아까워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송수창 넥스젤바이오텍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오랜 기간 연구개발(R&D)에 종사해온 연구원 출신이다. 의료기기와 의약용 필러, 바이오잉크 등에 활용되는 소재 관련 기술은 특허를 받았다. 하지만 연구 논문은 서류 더미에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점점 잊혀 갔다. 그러던 중 그는 서울시의 기술 이전 플랫폼 ‘테크 트레이드온’을 접하고 창업을 결심했다. KIST가 소유권을 가진 자신의 기술을 시장에 하나둘 내놓기 시작했다.

잠자던 기술이 기업으로…

잠자던 기술 1만건…서울시가 깨웠다
5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3년간(2022~2024년) 테크 트레이드온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 이전을 완료한 사례는 189건에 달한다. 테크 트레이드온은 정부출연연구소, 대학, 공공기관 연구실에서 잠자는 기술을 기업과 연결해주는 플랫폼으로 서울창업성장센터가 운영한다. 시가 같은 기간 확보한 사업화 유망 기술은 총 1만1305건으로 바이오, 정보통신(IT) 등 전 분야를 망라한다.

서울시는 연구진과 사업가·투자자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자처하며 2022년 테크 트레이드온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외부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경쟁력을 강화하도록 돕는 게 목표다. 기술 특허권을 양도하고 노하우를 전수한 이후에도 기술 자문, 구체적인 사업화까지 폭넓게 지원한다.

기술 이전 비용은 무상에서 수억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서울시는 최대 200만원을 지원한다. 서울시 창업정책과 관계자는 “소액이어도 유용한 기술을 발굴한다면 기업은 성장해나갈 동력을 얻는다”고 강조했다.

100억원 이상 투자 유치 사례도

성공 사례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넥스젤바이오텍은 친수성(물 친화적) 소재인 하이드로겔과 관련한 기술을 테크 트레이드온 플랫폼에서 이전받은 후 재가공해 시장에 선보였다. 이를 통해 16억원어치 기술을 다른 기업으로 이전했고, 후속 투자 39억원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원료의약품 제조기업 네오켄바이오는 기술이전을 통해 의약 분야 기술을 받아 의료용 대마 상용화에 성공했다. 유치한 투자 금액만 100억원이 넘는다.

테크 트레이드온은 기술 거래 이후 사후관리도 철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술을 이전받은 기업은 1000만원 규모의 R&D 후속 지원 프로그램 신청 자격을 부여받는다. KIST 연구실 장비 등을 꾸준히 활용할 수 있다. KIST가 보유한 연구 장비는 박막·산화막 측정 장비, 전자현미경 등 236종에 이른다. 시제품 제작, 기술 사업화 컨설팅도 지원받을 수 있다. 네오켄바이오는 기술을 개발한 연구 인력을 그대로 채용해 투입하고 있다.

이해우 서울시 경제실장은 “기술 이전을 통한 사업화는 효율적으로 창업 아이템을 발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며 “기술 이전 노하우를 축적한 기관과의 협력을 확대해 창업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