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원전 수출을 위한 정부 차원의 협의 채널을 신설하는 등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체코 원전 수출의 마지막 장애물이 걷히는 한편 한·미 원전 수출 동맹인 ‘팀 코러스(KOREA+US)’ 결성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전 수출 분쟁 예방

체코 두코바니 원전
체코 두코바니 원전
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과 미국 정부가 지난 1일 ‘한·미 원자력 수출 및 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MOU)’에 가서명했다고 발표했다. 약정을 통해 두 나라는 민간 원자력 기술의 수출 통제 관리를 강화하고 기후변화 대응, 글로벌 에너지 전환 가속화, 핵심 공급망 확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두 나라 정부는 이번 합의로 양국 산업에 수십억달러의 경제적 기회가 창출되고, 제조업 분야에서 일자리 수만 개가 생겨날 것으로 기대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두 나라 정부가 원전 수출 협력의 원칙을 정한 것”이라며 “앞으로 양국 기업이 수출 통제 관련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협력할 수 있는 미래 지향적 환경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2009년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 계약을 따낸 이후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등 에너지 공기업은 오랫동안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지식재산권 분쟁을 겪고 있다. 웨스팅하우스가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이 자사 ‘AP1000’을 기반으로 개발된 모델”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2022년부터 미국 법원에서 양측의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고, 웨스팅하우스가 7월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전에서 패한 뒤에는 한수원을 체코 경쟁당국에 제소했다.

원전 수주전이 벌어질 때마다 두 나라가 갈등을 빚기보다 정부 차원에서 사전에 교통정리를 해두자는 게 이번 MOU의 배경이다. 이를 위해 한·미 정부는 자국 기업의 원전 수출을 상시 협의할 수 있는 부처 간 채널을 만들 계획이다.

원전 수출과 관련한 정부 차원의 MOU가 마련됨에 따라 내년 3월 본계약을 목표로 진행 중인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출의 마지막 장애물도 자연스럽게 걷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차원에서 원전 수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만큼 웨스팅하우스도 합의점을 찾으려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양국 정부가 기업들에 협력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팀 코러스’ 틀 마련했다

이번 MOU가 한·미 원전 수출 동맹의 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과 미국이 갈등을 빚는 사이 세계 원전 시장은 러시아와 중국이 양분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이 바라카 원전 4기, 미국이 자국에 원전 1기를 짓는 동안 러시아와 중국은 각각 24기, 19기의 원전 계약을 따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원전의 74%에 달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세계 원전 시장은 탈탄소 전환과 인공지능(AI) 보급으로 급성장하고 있다”며 “양국 기업 간 분쟁 때문에 큰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상당 부분 작동했다”고 했다.

정용훈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미국으로서는 서방 세계에서 원전 전주기를 다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인 한국에 이겨도, 져도 문제”라며 “웨스팅하우스를 부드럽게 압박하는 한편 서방 세계가 협력해 러시아 중국을 견제하자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슬기/황정환/정영효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