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경험자는 맥주 한 잔 마실 자유도 없나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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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
선의로 포장된 강요와 통제 시달려
치료 및 간병 제도적 문제 지적
선의로 포장된 강요와 통제 시달려
치료 및 간병 제도적 문제 지적
"무리하지 말고 푹 쉬어."
암 경험자라면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하든 걱정 어린 시선을 받는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근거 없는 항암 정보와,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강요 아닌 강요는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를 원하는 암 경험자를 오히려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는 30대 중반에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은 저자가 쓴 책이다. 치료 후 일상에 복귀한 뒤 암 경험자로서 누려야 할 존엄과 자유의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내용을 담았다. 저자는 암 경험자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죄책감을 강요하는 암 치유 문화를 비판하며 "몸에 대한 윤리는 나를 잘 돌보는 데도 있지만 나를 즐겁게 하는 데도 있다"고 강조한다.
암 환자 혹은 경험자는 현실에서 걱정의 이름으로 포장된 강요와 통제의 대상이 된다. 건강한 사람들은 아픈 사람의 행동거지와 마음가짐까지 통제하려 든다. 술, 담배는 물론이고 격한 운동과 스트레스도 금기시된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 몸만 생각하라는 게 그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조언들은 지나치게 통제적이며 종종 서로 어긋나기도 한다. 저자는 비판적 어조로 암 치유 문화의 실상을 파헤친다. TV에서 나오는 생활 정보 프로그램에선 온갖 항암식단이 각축을 벌이지만, 한데 모아놓으면 결국 골고루 먹으란 결론이 나온다는 식이다. 암 환자를 비련의 주인공이나 재앙의 희생양으로 묘사하는 미디어의 재현 방식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암 치료 및 간병 문화를 둘러싼 제도적인 문제도 지적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 병원의 '3분 진료', 민간보험이 있어도 감당하기 힘든 의료비 부담, 노인과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돌봄 제도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아픈 딸을 잘 돌보라며 어머니를 닦달하는 주변 이웃들을 원망하다가, 복지제도에 대한 비판과 돌봄 공동체에 대한 제안으로 논의를 확장시킨다.
사회가 규정한 전형적인 환자 역할에서 벗어나려는 저자의 시도는 '지 쪼대로' 아플 수 있단 희망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가족의 맹목적인 사랑에 의존하는 대신, 가까운 이웃들의 돌봄을 받는다. 절대안정이란 통제에 순응하는 대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맥주 한잔의 자유를 누린다. 내 몸만 생각하는 보신주의에 빠져 있는 대신 사회를, 이웃을 염려한다.
암을 경험하고 극복한 사람의 에세이는 많지만 이 책은 기존의 투병기와는 결이 다르다. 병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일상과 삶에 대한 주체성을 놓치 않으려는 치열한 투쟁의 흔적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암 경험자라면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하든 걱정 어린 시선을 받는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근거 없는 항암 정보와,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강요 아닌 강요는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를 원하는 암 경험자를 오히려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는 30대 중반에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은 저자가 쓴 책이다. 치료 후 일상에 복귀한 뒤 암 경험자로서 누려야 할 존엄과 자유의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내용을 담았다. 저자는 암 경험자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죄책감을 강요하는 암 치유 문화를 비판하며 "몸에 대한 윤리는 나를 잘 돌보는 데도 있지만 나를 즐겁게 하는 데도 있다"고 강조한다.
암 환자 혹은 경험자는 현실에서 걱정의 이름으로 포장된 강요와 통제의 대상이 된다. 건강한 사람들은 아픈 사람의 행동거지와 마음가짐까지 통제하려 든다. 술, 담배는 물론이고 격한 운동과 스트레스도 금기시된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 몸만 생각하라는 게 그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조언들은 지나치게 통제적이며 종종 서로 어긋나기도 한다. 저자는 비판적 어조로 암 치유 문화의 실상을 파헤친다. TV에서 나오는 생활 정보 프로그램에선 온갖 항암식단이 각축을 벌이지만, 한데 모아놓으면 결국 골고루 먹으란 결론이 나온다는 식이다. 암 환자를 비련의 주인공이나 재앙의 희생양으로 묘사하는 미디어의 재현 방식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암 치료 및 간병 문화를 둘러싼 제도적인 문제도 지적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 병원의 '3분 진료', 민간보험이 있어도 감당하기 힘든 의료비 부담, 노인과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돌봄 제도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아픈 딸을 잘 돌보라며 어머니를 닦달하는 주변 이웃들을 원망하다가, 복지제도에 대한 비판과 돌봄 공동체에 대한 제안으로 논의를 확장시킨다.
사회가 규정한 전형적인 환자 역할에서 벗어나려는 저자의 시도는 '지 쪼대로' 아플 수 있단 희망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가족의 맹목적인 사랑에 의존하는 대신, 가까운 이웃들의 돌봄을 받는다. 절대안정이란 통제에 순응하는 대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맥주 한잔의 자유를 누린다. 내 몸만 생각하는 보신주의에 빠져 있는 대신 사회를, 이웃을 염려한다.
암을 경험하고 극복한 사람의 에세이는 많지만 이 책은 기존의 투병기와는 결이 다르다. 병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일상과 삶에 대한 주체성을 놓치 않으려는 치열한 투쟁의 흔적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