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로고 일러스트./로이터 연합뉴스
텔레그램 로고 일러스트./로이터 연합뉴스
“요즘 과장님들 텔레그램 스킬이 점점 진화하고 있어요. 볼드체에 이탤릭체까지 정말 편하게 씁니다.” (중앙부처 A 사무관)

“보고서처럼 ‘□’ 같은 기호도 쓰고, 엄청나게 화려해졌어요. 근데 이럴 것이면 차라리 보고서를 썼죠. 텔레그램에서마저 보고서를 써야 하는 것 같아 스트레스 받습니다.” (B 사무관)

공무원들이 업무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는 텔레그램이다. 보안이 뛰어난 데다 다른 메신저에 비해 업무용으로 쓰기에 편리한 기능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늘어나는 업무용 대화방과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메시지 알림 등 ‘텔레그램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

공무원들은 텔레그램이 ‘업무에 최적화된 메신저’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텔레그램에선 대화방에 올린 메시지를 자유롭게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수정이 제한되거나 5분 전에 보낸 메시지만 삭제할 수 있는 다른 메신저에 비해 사용이 편리하다는 것이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볼드체, 이탤릭체, 밑줄 긋기 등 다양한 서식을 사용할 수도 있다. 한 경제부처에서 근무하는 C 서기관은 “텔레그램은 예전에 대화방에 올렸던 파일들을 다시 검색하기도 편하다”며 “새 멤버를 대화방에 초대했을 때 이전 대화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다른 메신저와의 차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양한 기능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받는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하는 D 사무관은 “텔레그램은 대화방에서 내가 올린 메시지를 누가 읽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며 “과장님이 올린 메시지를 빠르게 확인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업무용 대화방이 계속 늘어난다는 점도 스트레스다. 통상 관련 부처에서 근무하는 E서기관은 “과장이 있는 과방, 국장이 있는 과방, 국방, 실장이 있는 방 등 보고 라인별로 업무용 대화방이 수십 개에 달한다”며 “새로운 보고를 위해 만들어지는 방도 많아서 나중에는 예전에 보고했던 자료가 어떤 대화방에 올렸던 것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토로했다.

공무원이 업무용 컴퓨터에서 자료를 텔레그램으로 옮겨 전달하려면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무원들은 국가정보원의 ‘물리적 망분리’ 원칙에 따라 사무실에서 1인 2컴퓨터를 사용한다. 물리적 망분리 원칙은 내부 업무망과 외부 인터넷망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다. 외부 해킹에 의한 국가 기밀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상사 승인을 받아 내부망에서 외부망으로 자료를 옮긴 뒤 네이버·구글 등 외부 메일로 보내고, 자료를 다시 다운받아 텔레그램으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도 텔레그램을 사용하는 이유는 부처 장관까지 이어지는 실질적인 보고 채널이 텔레그램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 사회에서 텔레그램 사용이 활성화된 것은 2020년께부터다. 이전에도 텔레그램이 사용되긴 했지만, 보편적이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텔레그램보다는 카카오톡이 더 많이 사용됐다.

하지만 2019년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카카오톡과 보이스톡으로 국회의원에게 유출한 혐의를 받은 외교관이 파면 처분을 받으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보안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확산했고, 텔레그램을 사용하는 공무원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텔레그램은 서버가 해외에 있어 국내 메신저보다 보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코로나19가 겹치면서 비대면 방식의 업무 처리가 늘어난 영향도 컸다.

보안이 강한 메신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2015년 공무원 전용 메신저 ‘바로톡’을 도입했다. 하지만 사용률이 극히 낮아 작년 1월부터 서비스 운영이 종료됐다. 화면 캡처 방지, 파일 다운로드 방지 등 보안 기능이 뛰어나지만 작동 속도가 너무 느리고 불편한 게 주된 원인이었다.

중앙부처의 한 서기관은 “이제 업무용은 텔레그램, 외부 및 기타 소통은 카카오톡으로 자리 잡았다”며 “텔레그램으로 처리되는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아예 휴대폰에 무선 키보드를 연결해 컴퓨터처럼 사용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