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업 붕괴 수준…2026년, 더 심각할 것" [종합]
"불편한 진실을 말하자면, 영화 산업이 거의 붕괴됐습니다."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은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의 현주소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6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영화진흥위원회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함께한 '한국 영화 활력충전 토크콘서트: 영화로운 합심!'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K 콘텐츠 중흥기 이후 급격한 침체기를 맞은 K 무비 산업의 분위기 전환과 이를 위한 정책 수요 파악을 위해 전재수 위원장, 임오경·박정하 의원 주최로 준비됐다.

윤하 영화진흥위원회 정책개발팀장은 ‘2024년 한국 영화 산업 현황 진단’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윤 팀장은 "많은 관계자가 영화 산업 힘들다고 한다. 반면 '위기 아니었던 적이 언제였나'라는 말도 있다.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합심해서 극복했다는 말이다. OTT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산업 구조가 변했고,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한국 영화는 천만 영화와 중급 영화가 공존했다. 특히 여름 시즌은 블록버스터와 텐트폴 영화가 전무했다. 윤 팀장은 "사실 중급 영화가 여름 시장을 키우진 못했다. 텐트폴과 같이 시장을 확대하는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며 "텐트폴과 중급 영화가 함께 나와 흥행하는 게 산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봉 시기의 변화에 대해서도 "'파묘'는 2월, '범죄도시'는 4월, '서울의 봄'은 12월 개봉했다. 이제는 콘텐츠가 시장의 크기를 좌우하는 시기가 왔다. 이제는 성수기가 아니라 매시기마다 승부를 해볼 만 한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임영웅의 콘서트 실황 영화 '임영웅│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 애니메이션 '사랑의 하츄핑' 등이 흥행한 것과 관련해 '팬덤 시대'가 펼쳐졌다고 분석했다. 윤 팀장은 "최근 콘텐츠 소비자들은 구체적이고 전문화된 분야에 관심을 보이고 극장에서만 충족할 수 있는 시청각적 경험을 원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어 진행된 토론회에는 ▲양윤호 감독(영화진흥위원회 위원·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이화배 이화배컴퍼니 대표 ▲김한민 감독(‘명량 ’ ‘한산’ ‘노량 ’ 등 연출) ▲ 김세형 롯데컬쳐웍스 투자제작팀장 ▲신한식 한국영화관산업협회 본부장 ▲신혜연 인사이트필름 대표(‘싱글 인 서울 ’ ‘퀸메이커’ 등 제작) ▲황경일 OTT 음악저작권대책협의체 의장이 참석했다.

이날 양윤호 감독은 "미국에서 한류를 얘기할 때 '쓰나미'라고 한다. 쓰나미는 한 번 지나가면 없어지지 않나. 한류 지속 가능성에 대해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 영화는 위기에 강하다. 내부적으로 변화를 해야 하는데 플레이어가 교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진 선수들이 대거 들어와야 하고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구성한 감독, 배우 다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김세형 팀장은 "영화 시장 자체가 팬데믹 이후 60%밖에 회복이 안 됐다. 저희는 이것이 뉴노멀이 아닌가 하는 시각으로 보고 있다. 투자 자체가 소극적으로 되고 자금도 안 돌고 있다 보니까 전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외부에서 기존에 해주셨던 외부 투자자도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배급사(투배사) 입장에선 시나리오 심사를 할 때 엄격하게 하고 있고, 신중한 스탠스가 지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이 내년까지 지속될 거라고 바라보고 있다. 더 보수적으로 봤을 때 2026년이 더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26년에 영화가 개봉하는데, 투자가 들어가지 못하고 있어 지원과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혜연 대표는 "제작 주체로 느끼는 위기는 편수의 축소다. 투자사가 어려우면 바로 체감하는 곳은 제작사다. 팬데믹 이전 투자사들은 1년에 10~12편 투자했다. 배급사가 5~6개가 있으니 한국 상업영화가 한 해에 70편 정도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어렵다. 1년에 5편 이하가 된 거 같다. 6개의 회사가 20~30편만 제작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극장에 왜 볼 영화가 없지 하는데 적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공적 자금을 통해 제작 편수를 유지해야 글로벌 OTT와의 상생, 공생을 고민할 수 있는 체력이 된다. 앞으로 또 어떤 위기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한민 감독은 "제가 10년 동안 이순신 3부작을 만들면서 점점 관객 수가 줄었다. 2014 '명량'은 1761만, 2022년 '한산' 720만, 작년 '노량'은 456만명의 누적 관객 수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산'은 코로나 이후에 개봉한 작품이다. 그 정도의 관객 수는 동원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그 작품들이 BEP를 못 맞추는 게 현실"이라며 "한 해 동안 한국 영화가 40편이 나오려면 공적 자금이 필요하다. 간곡하게 의원들께 부탁드린다. 최소한 2000~3000억원 정도의 공적 자금이 필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영화 제작에 투자할 수 있는 방식의 구조를 가지지 않으면 영화 제작 편수가 다시 올라가기는 힘들 거다. 대기업의 자본도 한계가 있고, 그래서 답은 글로벌 OTT인가 싶었는데 그들도 돈이 없다고 한다. 편수도 확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영화가 K컬처를 대변하고 세계에서 주도하는 분위기를 버리고 놓치는 건 아깝다"며 "세계인들이 좋아한다는데 많이 만들어 보여줘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조금만 마중물이 될 수 있는 공적 자금 투여가 꼭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참석자들은 극장 상영 후 2차 시장, 즉 OTT 시장 공개까지 유예를 주는 '홀드백'의 중요성에 대해 입을 모았다. 김 감독은 "제가 '한산', '노량'이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극장에 안 간다"며 "조금만 기다려도 안방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라고 짚었다.

이어 "공적자금과 홀드백에 대한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 홀드백 기간을 보면 프랑스 2년, 외국 최소 1년이다. 우리는 최소한 6개월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최근 '장손'이 누적 관객 수 3만 명을 들이면서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백재호 이사장은 "독립영화는 어렵고 힘든 이야기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선입견"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스크린 전체 개수가 3500개 정도가 되는데 독립영화가 개봉하면 전국에 30개, 많으면 70개에 걸린다. 그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독립영화의 자생이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신한식 본부장은 "실제 극장은 대규모 적자가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하드웨어 투자는 일어나고 있다. 아이맥스, 돌비 등 영상 시스템 업데이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일 중요한 건 콘텐츠다. 콘텐츠가 있어야 영화관을 운영할 수 있다. 홀드백 제도가 있어 줘야 콘텐츠의 가치가 올라간다. 공적 자금을 통한 선순환 구조를 하다 보면 그게 마중물 역할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