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보험회사의 ‘고무줄 회계’ ‘실적 부풀리기’를 차단하기 위해 새 회계기준(IFRS17)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최대 관심사인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가정에선 보험사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큰 ‘원칙 모형’을 제시했다.

▶본지 10월 26일자 A1, 2면 참조

다만 영향이 작은 ‘예외 모형’도 인정하기로 했다. 당국은 원칙 모형 채택을 유도한다는 방침이지만 상당수 보험사가 예외 모형을 택하며 반기를 들고 나섰다.

○낙관적 가정 손본다

금융당국, 무해지 보험 제동…'실적 뻥튀기' 차단 나선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7일 ‘IFRS17 주요 계리가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가정, 단기납 종신보험 해지율 가정, 연령대별 손해율 가정에 대한 실무 표준이다. 보험사는 이 가정들을 올해 결산 실적부터 반영해야 한다.

가이드라인은 무·저해지 보험의 해지율 가정을 산출할 때 시간이 갈수록 해지율이 낮아져 완납 시점에는 0%에 근접하는 ‘로그-선형 모형’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무·저해지 보험은 납입 기간 내에 해지하면 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대신 보험료가 싼 상품이다. 저렴한 보험료를 앞세운 무·저해지 보험은 보장성 보험 신규 계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47%에서 올 상반기 63.8%로 올라갔다.

일부 보험사가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을 높게 가정해 ‘실적 부풀리기’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무·저해지 보험은 기간 경과에 따라 해지율이 내려가는 게 합리적인데도 경험 통계가 없다는 이유로 특정 시점 이후 해지율을 2~4% 수준에서 고정한 보험사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저해지 보험은 2016년부터 국내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해지율이 올라가면 환급금이 줄어 보험사 이익은 그만큼 늘어난다. 보험사들은 이런 낙관적 가정을 바탕으로 보험료를 낮춰 공격적으로 영업해 왔다. 이 때문에 앞으로 보험료가 올라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실적 악화 불가피

이번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 무·저해지 보험을 보유한 모든 보험사의 실적이 악화할 전망이다. 예컨대 보험계약마진(CSM)이 10조원대인 대형 A사는 원칙 모형을 적용하면 CSM이 1조원가량 줄어들고 연간 순이익도 1000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예외(선형-로그) 모형도 인정하기로 했다. 예외 모델은 원칙에 비해 해지율이 완만하게 떨어지며, 실적 충격도 그만큼 작다. 앞서 예로 든 A사가 예외 가정을 쓰면 CSM은 6000억원, 순이익은 600억원가량 줄어든다.

보험사 상당수는 수익성과 보험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예외 모형을 쓰겠다는 입장이다. 무·저해지 보험을 취급하는 10곳의 손보사 중 7곳은 예외 가정을 쓰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두 곳은 “예외 모형을 쓰면 원칙보다 보험료를 10%가량 내릴 수 있다. 경쟁사가 예외를 쓰면 따라갈 것”이라고 했다. 나머지 한 곳은 판단을 보류했다.

금융당국은 각종 보완책을 활용해 보험사들이 원칙 모형을 쓰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예외를 택한 보험사는 감사보고서와 각종 공시에 원칙과 예외 적용 결과를 모두 표기해야 한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오는 11일 보험사 최고재무책임자(CFO) 간담회를 열고 원칙 모델 채택을 당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가이드라인은 또 단기납 종신보험에선 해지 환급금이 늘어나는 10년 차부터 해지율 30%를 의무 적용하도록 했다.

강현우/서형교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