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백악관 주인이 되면서 ‘미국 우선주의 2탄’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당장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트럼프는 대선 때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으로 한국 등 동맹국 자동차를 지목하며 “모든 자동차가 미국에서 만들어지길 원한다”고 했다. 자동차 수출이 타격받을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고 배터리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폐지하겠다고 했다. 가뜩이나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곤경에 빠진 배터리 업체에는 설상가상인 상황이다. 미국 시장을 겨냥해 단행해온 대규모 투자가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반도체도 ‘트럼프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칩스법(반도체지원법)에 대해 트럼프는 “나쁜 거래”라며 폐지하겠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칩스법에 따라 각각 64억달러와 4억5000만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돼 있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10~20% 보편관세, 중국산에 60% 관세 부과도 공언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 보편관세가 부과되면 대미 수출은 304억달러, 전체 수출은 448억달러 줄어들 것으로 봤다. 트럼프 측이 한국을 겨냥해 노골적인 통상 압박에 나서거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2020년 166억달러에서 지난해 444억달러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도 9월까지 399억달러에 달했다는 점에서다.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도 한국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과거엔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와 화웨이 제재 등으로 우리 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렸지만 트럼프 2기 때도 똑같은 수혜가 반복되리라고 낙관할 수 없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60% 관세를 때리면 대중 중간재 수출이 많은 한국도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지 못한 물량을 다른 나라로 밀어내면 세계시장에서 출혈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거센 보호무역 파도를 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결국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려면 혁신을 가로막는 시대착오적 규제 철폐, 연구개발(R&D)과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체시장 개발과 경직된 노동시장 개혁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조차 미국 빅테크에 우수 인재를 뺏기는 게 현실이다. 능력에 따라 일한 만큼 보상하기 힘든 연공서열제에선 핵심 인재를 붙잡기 어렵고 기술 경쟁에서 이길 수도 없다.

트럼프 2기는 우리에게 기회이기도 하다. 트럼프 당선인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 조선업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했다. 한·미 조선동맹 수준으로 협력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다. 원전과 방산도 유망 분야로 꼽힌다. 트럼프 시대에 맞게 국익을 극대화할 길을 찾는다면 미국 우선주의의 파도도 얼마든지 넘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