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영화인들의 SOS가 공허한 이유
‘이순신 3부작’으로 알려진 영화 시리즈가 있다. 이순신 장군이 두 차례 왜란에서 맞닥뜨린 결정적 순간을 그린 이야기로, 2014년 개봉한 ‘명량’으로 시작해 ‘한산: 용의 출현’(2022) ‘노량: 죽음의 바다’(2023)로 막을 내린다. 세 작품이 동원한 관객만 2944만 명. ‘범죄도시’ 시리즈와 함께 가장 성공적인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리즈라고 부를 만하다.

그런데 속을 뜯어 보면 성공이라고만 하기엔 조금 아쉽다. ‘한산’(726만 명)과 ‘노량’(467만 명)의 관객 수를 합쳐도 ‘명량’(1761만 명)에 한참 못 미쳐서다. 심지어 ‘노량’은 손익분기점(BEP)도 못 넘었다. 구국의 영웅이라는 소재, 화려한 캐스팅 등 흥행 보증수표를 두둑하게 들고도 결과가 아쉬운 배경엔 개봉 시기가 있다. ‘명량’이 한국영화가 가장 신바람 났던 2010년대를 수놓은 작품이라면, 다른 두 작품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장과 관객이 단절된 시기에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영화 활력충전 토크콘서트’에서 영화인들이 앞다퉈 “영화산업은 붕괴된 상황”이라고 밝힌 건 이런 맥락에서다. 팬데믹을 겪은 지 4년이 지났지만, 영화시장은 회복은커녕 악화일로다. 극장 대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찾는 게 당연해졌고, 투자 경색으로 연간 70여 편에 달하던 제작 편수는 20여 편으로 뚝 떨어졌다. 지금 영화계는 감독부터 작가, 배우, 스태프까지 비자발적 이직과 전업이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곳이다.

돌아보면 대중문화 개방, 스크린쿼터제 축소 등 한국영화가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다만 영화인들은 작금의 위기는 과거와 구분돼야 할 정도로 생존을 위협하는 재난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영화 관련 예산이 삭감된 데 거세게 반발하고, 정부 차원의 공적자금 투입이 꼭 필요하다고 한 뜻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하지만 당위가 결과로 이어지려면 그사이에 설득과 논리가 있어야 한다. “한국영화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해 보이나,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따진다면 마냥 수긍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산업과 예술 장르 중 ‘활력 잃은 현장’은 비단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화 티켓이 비싸다”는 대배우의 한마디에 맞장구 대신 나온 “‘억대 몸값’ 출연료부터 문제”라는 볼멘소리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비판이다.

이순신 3부작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국회 토론장에서 “2000억~3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영화 시장에 투입해야 한다”며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프랑스 누벨바그, 영국 프리 시네마 등 여러 영화사적 운동들이 돌고 돌아 지금은 한국이 K콘텐츠란 이름으로 문화 주도권을 잡았는데, 놓치면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