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국산 라디오로 평가되는 금성사 A-501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최초의 국산 라디오로 평가되는 금성사 A-501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57년 라디오 국산화를 놓고 락희화학(현 LG화학) 내에서 찬반양론이 팽팽했을 때 창업자인 구인회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영원히 PX에서 외국 물건만 사 쓰고 라디오 하나 몬 맹글어서 되겄나. 누구라도 해야할 거 아닌가. 우리가 한 번 해보는 기라. 먼저 하는 사람이 고생도 되겄지만 고생하다 보면 나쇼날이다, 도시바다 하는 거 맹키로 안 되겄나.”

이듬해 금성합성수지공업사의 이름을 금성사(현 LG전자)로 바꾸면서 라디오 국산화 사업이 본격 추진됐다. 독일인 H. 헨케와 한국인 김해수가 이 일을 맡았는데 둘은 제품 설계를 놓고 상당한 논쟁을 벌였다. 김해수는 최신형 일제 라디오를 모방해 옆으로 길고 나지막한 몸체를 선호했다. 헨케는 유럽 중세 교회처럼 아래 위로 긴 상자에 윗 면이 둥그스름한 구조를 밀었다. 회사 간부들의 투표한 결과 김해수의 견본이 절대 다수의 지지를 얻었다. 그 후에도 크고 작은 의견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헨케는 계약 기간을 다 채운지 못한 채 금성사를 떠났다.

그렇게 국산 라디오 1호는 금성사의 김해수에 의해 1959년 11월 15일 출시됐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원년으로 평가되는 해다. 국산 라디오 보급이 쉽지는 않았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나섰다. 밀수품 근절에 나섰고 전국 농어촌에 라디오 보내기 사업을 벌였다.
"외국 물건만 사 쓰고 라디오 하나 몬 맹글어서 되겄나" [서평]
<한국인의 발명과 혁신>은 부산대에서 ‘인물로 보는 기술의 역사’를 가르치는 과학기술사학자 송성수 교수가 쓴 책이다. 한국인이 주도한 발명과 혁신 사례를 모았다. 익숙한 이름인 최무선과 장영실, 정약용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양의사인 김점동, 한국 근대 건축을 개척한 박길룡, 가난한 목공에서 동명그룹의 총수가 된 강석진, 한국 철강 산업을 만든 박태준 등이 등장한다. 여러 사람의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 기술이 개발된 사례도 기업의 이름으로 담겨 있다. 한국 국산 자동차의 경쟁력을 끌어올린 현대차, 반도체 산업의 길을 연 삼성 반도체, 밭솥의 절대 강자 쿠쿠전자 등이다.

저자는 서양 중심의 연구와 서술에 아쉬움을 느끼고 직접 한국의 사례를 찾고 모았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지폐 속 인물에 더 아쉬움이 느껴진다. 이 책에 나온 사람 중 하나를 지폐 인물로 해도 좋지 않을까.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