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배웠지만, 배우지 않았다고?
“학교에서는 미적분학을 가르쳤지만 난 배우지 않았어(I was taught calculus, but I didn’t learn it).”

언젠가 영국인 친구가 내게 한 말이다. 자신은 미적분학을 모른다며 선생님이 가르치긴 했지만 자신은 배우지 않았다고 했다. 미분의 개념이 뭔지, 그게 어떻게 쓰이는지 모른 채 문제만 풀었는데 기억나는 게 없다는 것. 필자도 고교 시절 수학 문제 유형별 풀이법을 외우고, 반복해서 풀었다. 어디에 적용되고 활용되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출출한 오후. 좋아하는 초코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최고의 기분이다. 이때의 만족감을 10이라 하자. 다음 한 입, 또 다음 한 입 먹을수록 한 입 섭취에 의한 만족감 증가분은 줄어든다. 만족감 증가분이 0이 될 때까지 먹으면 초코케이크 섭취로 인한 총만족감은 최대가 된다. 이게 미분이다. ‘증가함수에서 미분계수가 0이 될 때 함숫값이 최대’라는 게 생활에서 이렇게 적용된다. 생활 곳곳엔 수학 개념이 스며있지만 우리는 어떻게 푸는지에만 관심을 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수학은 30문항, 제한 시간 100분이다. 답안지에 답을 체크하고 점검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한 문항에 주어지는 시간은 3분. 일명 ‘킬러 문항’이라고 부르는 고난도 문제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하려면 대부분의 문항은 1~2분 내로 해치워야 한다. 문항을 보자마자 어떻게 푸는 건지 기계적으로 나와야 상위권 진입이 가능하다. 개념을 깊이 있게 이해하더라도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못 풀면 ‘수학 못하는 학생’이 된다.

아이가 일곱 살 때쯤 이집트 문명 전시를 보러 갔다. 아이는 이집트 문명 유물과 분위기에 매료돼 이집트 문화에 관해 묻고 찾아보며 탐구를 시작했다. 이집트 신화를 읽고, 상형 문자가 어떻게 해독된 것인지 궁금해했다. 이집트 문명이 그리스에 영향을 줬다는 걸 알게 되자 그리스신화도 다시 공부했다. 점토로 피라미드를 만들며 어떤 각도로 만들어야 하는지 찾다가 안정적 각도와 삼각비를 공부하게 됐다. 이집트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이 이어져 중학생이 된 아이는 철학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간략히 요약했지만 7~8년 동안의 긴 탐구과정이다. 호기심이 생기면 그에 대해 스스로 찾아보며 공부하게 된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대화하다 보니 용돈을 즐겁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빨리 써버리게 돼서 찜찜한 마음을 가지는 걸 알게 됐다. 지출 계획을 세우더라도 학생마다 충동적으로 소비하게 되는 분야가 있었다. 여기서 우린 항목별 한도를 정해두고 용돈 정리 앱에서 한도 알림을 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생활에 적용했다.

아이들은 가르치는 대로 배우는 게 아니다. 본인이 궁금한 걸 찾아 탐구할 때 그 의미와 쓰임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