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라디오 하나 몬 맹글어서 되겠나"
1957년 라디오 국산화를 놓고 락희화학(현 LG화학) 내에서 찬반양론이 팽팽했다. 그때 창업자인 구인회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영원히 PX에서 외국 물건만 사 쓰고 라디오 하나 몬 맹글어서 되겄나. 누구라도 해야 할 거 아닌가. 우리가 한번 해보는 기라. 먼저 하는 사람이 고생도 되겄지만 고생하다 보면 나쇼날이다, 도시바다 하는 거 맹키로 안 되겄나.”

이듬해 금성합성수지공업사를 금성사(현 LG전자)로 이름을 바꾸면서 라디오 국산화 사업이 본격 추진됐다. 그렇게 최초의 국산 라디오는 금성사 1회 공채에 수석 합격한 기술자 김해수에 의해 1959년 11월 15일 출시됐다.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원년으로 평가되는 해다. 국산 라디오 보급이 쉽지는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나섰다. 밀수품을 근절하고, 전국 농어촌에 라디오 보내기 사업을 벌이면서 활로가 열렸다.

<한국인의 발명과 혁신>은 부산대에서 ‘인물로 보는 기술의 역사’를 가르치는 과학기술사학자 송성수 교수가 쓴 책이다. 한국인이 주도한 발명과 혁신 사례를 모았다. 최무선과 장영실, 정약용부터 한국 최초의 여성 양의사 김점동, 근대 건축을 개척한 박길룡, 가난한 목공에서 동명그룹 총수가 된 강석진, 한국 철강산업을 만든 박태준 등이다. 현대자동차, 삼성 반도체, 쿠쿠전자 등도 혁신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저자는 서양 중심의 연구와 서술에 아쉬움을 느껴 한국의 사례를 찾고 모았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지폐를 장식하는 인물에 아쉬움이 느껴진다. 이 책에 나온 사람 중 한 사람을 지폐 인물로 해도 좋지 않을까.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