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트럼프 2.0 시대’ 대비에 적극 나서고 있다. 6조위안(약 1160조원) 규모의 재정 부양을 결정하는 등 향후 미국과의 무역전쟁 과정에서 겪을 경제적 타격에 대한 방책을 마련하고 있다.
美공세 맷집 키운다…中, 6조위안 부양 카드

○전인대 폐막…지방에 6조위안 ‘수혈’

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회의가 닷새간의 일정을 마치고 이날 폐막했다. 이날 전인대 상무위는 지방 부채 해결을 위한 예산 6조위안을 승인했다. 앞으로 3년간 지방정부의 특수채 발행 한도를 6조위안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란포안 재정부장은 지난해 말 기준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 규모가 14조3000억위안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번 전인대 상무위 회의는 당초 지난달 말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국 대선 결과를 지켜본 뒤 경기 부양책 승인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일정을 늦췄다. 사실상 국회 격인 전인대 상무위는 중국 중앙정부의 재정 부양책 승인 권한을 갖고 있다. 중국 정부는 둔화하는 경제 성장률과 지속되는 부동산 침체, 얼어붙은 내수를 되살리기 위해 지난 9월 말부터 각종 부양 패키지를 내놨다. 정책 금리 인하, 증시 안정화 자금 투입, 부동산 시장 유동성 공급 등이다. 하지만 특별국채 발행 등을 포함한 재정 부양책의 구체적인 규모를 공개하지 않아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다.

랴오민 중국 재정부 차관은 블룸버그통신에 “최근 잇단 경기 부양책 목적은 내수를 진작해 연간 경제 성장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며 “재정 부양 규모가 꽤 클 것”이라고 예고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전인대 상무위에서 지방정부 부채 해결을 위한 예산 6조위안을 포함해 앞으로 몇 년간 10조위안 규모의 부양책을 승인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8%에 해당하는 규모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올 10월 이후 서비스업과 수출 데이터가 긍정적으로 나오면서 중국 고위 관리들이 올해 5% 안팎의 경제 성장률 목표 달성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면서도 “지방 부채 해결과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대규모 재정 정책을 승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래리 후 맥쿼리캐피털 중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새 무역 정책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경기 부양책이 추가로 확대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1기 때처럼 당하지 않겠다”

중국 정부는 현재 복합적인 위기에 놓여 있다. 내수 둔화와 부동산 시장 침체 등 국내 경제 문제뿐만 아니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인한 경제적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중국을 복합적 위협 대상으로 규정하고 1기 행정부 시절 무역 전쟁을 뛰어넘는 고율 관세 부과를 선언했다. 중국산 수입품에 최소 60%의 관세를 매기고 자동차 등 일부 제품에는 200%까지 관세를 물린다는 계획이다.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도 철폐하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내수 부진에 허덕이는 중국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에 직격탄이 되는 조치다. 트럼프 당선인은 공급망에서 중국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경제에 타격을 주는 정책 추진을 예고했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은 4272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12.6%를 차지했다.

다만 일각에선 미·중 무역 갈등의 파급 효과가 우려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돌아온 트럼프 당선인이 미·중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테지만 중국이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해놨다는 판단에서다.

일단 4년 전에 비해 첨단 기술 영역이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중국 업체들은 자체 개발과 우회 무역으로 첨단 반도체를 포함한 미국의 기술 통제를 피해가고 있다. 중국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으로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부문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그간 관계가 우호적이지 않던 유럽·아시아 일부 국가와 개별적인 접촉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당선인이 처음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한 2018년엔 중국이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과거에 비해 미국과의 싸움에 체계적으로 잘 대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