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여 잊지 말라
너도 젊었을 땐
떫었다는 것을.


-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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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여 잊지 말라. 너도 젊었을 땐... [고두현의 아침 시편]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의 하이쿠 시편입니다. 그는 일본 최초의 근대 문학가이자 ‘근현대 일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지요. 산문뿐만 아니라 하이쿠도 아주 잘 썼습니다.

‘홍시여 잊지 말라/ 너도 젊었을 땐/ 떫었다는 것을’에 나오는 ‘홍시’는 말랑말랑하게 잘 익은 우리나라의 붉은 감이 아니라 ‘타루가키(たるがき·樽枾)’라고 하는 일본의 감 장아찌를 가리킵니다. 일본 사람들이 감의 떫은맛을 없애려고 소금을 뿌려 오래 삭혀서 먹는 음식이지요.

이 시는 인생의 경륜을 홍시에 비유하면서 젊은 날의 객기를 떫은 감에 빗댄 하이쿠의 명편입니다. 하이쿠에는 하나의 계절어(季語)가 꼭 들어가는데, 이 시에서 ‘홍시’는 가을을 말해주는 계절어입니다. 이처럼 하나 이상의 자연 소재를 넣어 창작 당시의 시공간을 짐작하게 하는 게 기본 작법이지요.

꽃잎 핀 아침
시를 노래하는
그이의 소식이려나.


이 작품은 2014년에 발견된 그의 미발표 하이쿠입니다. 소설 《도련님》 무대인 시코쿠 북서부 진조중학교의 동료 교사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것을 118년 만에 발견했다고 합니다.

편지는 1896년 4월 8일자로, 그가 구마모토현 제5고등학교(현 구마모토대)에 교사로 부임할 때 전 근무지였던 에히메현 진조중학교(현 마쓰야마히가시고교) 동료 이카이 다케히코(猪飼健彦)에게 보낸 것입니다. 작별 인사차 왔다가 그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 동료의 편지에 대한 답신이지요.

그는 동료가 헛걸음하게 된 것을 오히려 미안해하면서 ‘편지 속의 단가(短歌)를 소중하게 보관하겠노라’는 답장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하이쿠에 담아 보냈습니다. ‘꽃잎 핀 아침/ 시를 노래하는/ 그이의 소식이려나’에 이런 감성이 잘 녹아 있습니다. 마당가에 핀 꽃을 보고 당신의 소식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얘기이지요.

그는 국비유학으로 영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엘리트지만 강단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의 위선을 풍자한 시도 많이 썼습니다. 대표작인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도 구샤미 선생을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몇 편을 예로 들어볼까요.

‘기나긴 봄날/ 케케묵은 설법하네/ 박사 선생님.’
‘능력도 없는/ 떫은감 투성이네/ 교문 안에는.’
‘에잇 이 녀석/ 파리를 때려잡는/ 서생 공부방.’

이런 시는 풍자나 비판에 가까운데 해학미가 더 돋보이는 작품도 많습니다. 소설 속 구샤미 선생의 얼굴에 난 곰보 자국처럼 그 자신도 천연두를 앓은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를 하이쿠에 접목하기도 했지요.

‘으스름달밤/ 얼굴과 안 어울리는/ 사랑을 하네.’

치질 수술을 받으러 입원했을 때도 ‘가을바람 속/ 도축 당하러 가는/ 소의 엉덩이’라는 시를 남겼으니 가히 ‘일본의 셰익스피어’다운 감성입니다. 그의 절친인 ‘근대 하이쿠의 아버지’ 마사오카 시키와의 일화, 그 속에서 탄생한 시도 여러 편 있습니다. 이 얘기는 다음 기회에 들려드리겠습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