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7일 밤부터 8일 새벽까지 이스라엘 축구 팬들을 겨냥한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암스테르담 당국은 사흘간 시내 시위를 금지하고 경찰 병력을 늘리는 등 보안 조치를 강화했다. 최근 유럽 내에서 커지고 있는 반유대주의 움직임이 위험 수위를 넘겼다는 경고가 나온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7일 암스테르담 요한 크라위프 아레나에서 열린 네덜란드 축구팀 아약스와 이스라엘 마카비 텔아비브 간 유로파리그 경기가 끝난 뒤 도시 곳곳에서 원정 응원을 온 이스라엘 축구 팬들이 공격당했다.

유대인 폭력 사태로 번진 축구 응원

암스테르담 당국에 따르면 7일 밤부터 8일 새벽에 걸쳐 신원 불명의 젊은이들이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며 도시 내 이스라엘 축구 팬들에게 뺑소니를 가했다. 택시 차량 여러 대도 함께 움직이며 공격 대상을 몰아세우는 등 공격에 가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확산한 영상 중에는 행인을 여러 명이 구타하는 장면이 있었고, 일부 확인되지 않은 영상에서는 사람들이 친팔레스타인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담겼다.

암스테르담 곳곳에서 벌어진 유대인 폭력 사태로 최소 5명이 다쳐 입원했으며 약 20~30명이 경상을 입었다. 총 63명이 체포됐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텔레그램에서는 암스테르담에서 유대인을 겨냥한 공격을 선동하는 메시지가 확산됐다.

펨커 할세마 암스테르담 시장은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사람들이 유대인을 사냥하러 가자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텔레그램 측은 성명을 내고 폭력 사태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채팅방을 폐쇄했다고 했다. 마이크 라브도니카스 텔레그램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텔레그램 플랫폼에서는 폭력 선동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폭력 사태에 앞서 암스테르담에서는 이미 이스라엘 축구 팬들과 친팔레스타인 세력 간 충돌이 여러 차례 발생하며 갈등이 고조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당국은 경기 전날인 6일 밤에도 마카비 텔아비브 팬과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연루된 충돌 사태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양측 세력 모두 폭력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당시 이스라엘 축구 팬들은 건물 벽면에 걸린 팔레스타인 국기를 내리고 불을 붙였으며, 택시 한 대를 공격했다고 당국은 밝혔다. 이에 암스테르담 당국은 7일 밤 축구 경기를 앞두고 시내 곳곳에 800명 이상의 경찰 병력을 배치하고 경기장 인근에서 예정되어 있던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금지하는 등 대비에 나선 상태였지만 도시 곳곳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를 막지 못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는 反유대주의 정서네덜란드 국왕·총리 '용납할 수 없다'

유럽 수도 한복판에서 반유대주의 폭력 사태가 벌어지며 최근 수년 사이 유럽 내에서 확산하고 있는 반유대주의 정서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월 발간된 유럽연합(EU)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내 유대인 커뮤니티들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 공격 이후 유럽 내에서 반유대주의 행동이 5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WSJ은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유럽 주요 도시들에서 거의 매주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을 비판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어 당국이 이스라엘 정부 비판과 반유대주의를 구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짚었다.

네덜란드와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각각 폭력 사태를 공개적으로 규탄했다.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은 "우리의 역사는 이러한 위협이 어떻게 점점 더 나빠지는지를 가르쳐줬다"면서 과거 나치 독일에 의해 네덜란드의 유대인 4분의 3 이상이 숨졌던 역사를 언급했다. 그는 네덜란드 내에 모든 유대인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딕 슈프 네덜란드 총리는 이번 사건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 다음 주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성명을 통해 네덜란드 정부에 "강력하고 신속한 조처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1938년 나치 독일에서 있었던 유대인 약탈 사건인 '수정의 밤'(11월 9∼10일)에 빗대어 설명했다. 당시 이 사건으로 살해된 유대인은 약 91명에 달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암스테르담 내 이스라엘인에게 외출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고, 8일 밤 이스라엘인을 위한 구조 항공편을 네덜란드로 급파했다.

WSJ는 상대 팀에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극단적인 축구 팬 문화인 '훌리건'이 유럽의 정치 및 시위에 얽혀있다고 전문가를 인용해 보도했다. 사회경제적 긴장과 사회적 혼란, 정치적 분노, 때로는 조직 범죄 등이 폭력 사태가 촉발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김세민 기자 unija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