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랜드마크vs랜드마크] 감응과 멍함, MIT 채플 대 강화도 멍때림 채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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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의 명문 하버드 대학과 비견되는 MIT 공과대학에는 기계적 이미지의 박스형 건물들로 가득찬 학교 분위기에 맞지 않는 원통형의 채플건물이 있다.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세계대전 동안 과학기술을 무기 개발로 연결하며 크게 성장해온 MIT 공과대학은, 전쟁 후 인문학과의 통합교육으로 방향을 틀면서 학교생활과 공동체 모임을 중시하게 되고, 이를 뒷받침할 새로운 건물로 쉘 모양의 공연장과 다용도로 활용할 비종파적 사색의 공간인 채플을 캠퍼스의 중앙에 짓게 된다.
어둠 속에서 빛을 신비롭게 구현
건축설계는 튤립 모양의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JFK 공항의 TWA터미널을 설계한 에로 사리넨이 맡았다. 그는 공연장과 함께 자그마한 채플을 설계하면서 처음에는 사각형의 건물도 생각하였으나 모든 것의 중심이 되며 독립적이고 내적인 느낌을 주는 원형의 건물로 구상하게 된다. 조그만 인공연못으로 둘러싸인 단아한 붉은 벽돌의 원통형 구조체의 채플은 그 자체로 조각물과 같은 느낌이다. 내부에 들어가게 되면 채플은 성스럽기까지 한 감동의 공간으로 바뀐다.
창이 없는 벽돌로 만들어진 어두컴컴한 원통형의 공간에 천장에서 내려오는 강한 빛 한줄기가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빛은 베르토이라는 금속공예가가 설계한 천창 아래 매달린 수많은 조그마한 금속판넬 조각들에 의해 산란되며 빛의 존재를 증폭시킨다.
원형공간을 감싼 벽돌벽 아래는 뚫려져 있어 바깥의 연못을 통해 반사하여 들어오는 빛이 파도 모양으로 요철을 가진 벽돌벽에 반사되며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태리 대리석인 베이지색의 밝은 트라버틴으로 마감된 바닥은 어두운 벽면과 대조되며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며, 높은 열에 구워질 때 울퉁불퉁 거친 질감을 갖게 된 클링커 벽돌은 자연스러운 맛을 더하여 준다.
에로 사리넨은 젊은 시절 그리스 여행을 하며 캄캄한 밤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달빛과 지상의 연한 불빛이 이 세상을 초월하는 어떤 느낌으로 이끄는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어두움 속에서 건물 위에 작지만 강한 빛의 천창과 아래로부터의 물에 비친 은은한 역광이 공간의 깊은 감응을 불러 일으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하늘과 바다로 구현한 ‘비움의 미(美)’
감응과 멍때림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듯이 MIT 채플과 비슷한 목표를 가졌으면서도 사뭇 다른 방식으로 디자인된 재미있는 채플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2023년 한국건축가협회에서 선정한 우리나라의 대표 건축물 7개 안에 뽑힌 강화도의 멍때림 채플이다. 경희대 건축학과 이은석교수의 작품이다.
채플 안에 들어서면 전면으로 단아한 스테인드 글라스(정경미 작품) 창들이 눈에 들어오고, 노출 콘크리트 벽속에 파묻힌 파이프오르간을 뒤로하고 정면을 바라보면, 강화도 앞 바다가 보일 듯 말 듯 한 높이의 긴 수평창이 회색 빛의 하늘과 바다를 오랜시간 멍하니 바라보게 만드는 곳이다. 파이프오르간이라도 연주가 되면 악기의 울림통 속에 들어와 있는 듯 작은 채플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이 건물은 정방형의 사각형 건물이기에 모서리와 4개의 면이 있어 원형의 건물과는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다. 사각뿔인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처음 자리를 잡을 때 분명 바닥의 사각면을 어떤 이유에서건 방향을 맞췄으리라 생각된다. 사막지역 이기에 특별한 지형지물이 없었으므로 피라미드는 사막의 강렬한 해가 뜨는 방향에 맞춰 지었거나, 나일강에 평행하게 면하게 지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멍때림 채플은 산을 뒤로하고 바다를 전면으로 하여 분명한 방향성이 있는 공간이기에 사각형으로 적용한 것이다.
MIT 채플과 멍때림 채플은 원형과 정사각형이라는 형태적 순수성을 갖지만, 사람들에게 어필되는 것은 왜소한 형태에 비해 진한 감동을 주는 그 내부의 공간이다. 그 형태 안에 그 형태와 닮은 내부공간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되지만, 그 안에서의 느낌을 상상하는 것은 전문가들도 쉽지 않다. 물체의 크기는 커 보이고, 비워진 부분의 크기는 작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형, 삼각형, 정사각형 등 기하학적으로 순수한 공간은 인간에게 원초적인 감응을 불러 일으키는 강한 임팩트를 주기 때문이다. 또한 두 건물 모두 회랑을 거쳐 들어가면서 내부공간에 대한 기대값을 증폭시켜주는 효과도 있다.
두 건물의 다른 점은 MIT 채플은 건축가가 원하는 분위기 창출을 위해 고도로 디자인된 수법들, 폐쇄된 공간 속의 조그만 천창, 조형물, 파도치는 벽, 반사광 등 인위적 수법들을 사용하여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서양식 도구주의가 작용했다면, 멍때림 채플은 비워진 공간에 전면의 큰 창을 통해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건물의 디자인 요소보다는 외부의 환경이 드러나 보이도록 하여 비움의 동양철학이 적용되었다고 생각된다.
이 두 개의 자그마한 채플은 세상의 번거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며, 연주회나 추모식이 열린다면 그 행위의 본질에 우선해서 무드를 고양시켜 주는 공간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기독교의 개혁이후 공간의 신성함을 통해 영성을 일깨우는 것을 비판해왔다고는 하지만, 어떤 공간은 분명 목적과 상관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어 보인다.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
어둠 속에서 빛을 신비롭게 구현
건축설계는 튤립 모양의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JFK 공항의 TWA터미널을 설계한 에로 사리넨이 맡았다. 그는 공연장과 함께 자그마한 채플을 설계하면서 처음에는 사각형의 건물도 생각하였으나 모든 것의 중심이 되며 독립적이고 내적인 느낌을 주는 원형의 건물로 구상하게 된다. 조그만 인공연못으로 둘러싸인 단아한 붉은 벽돌의 원통형 구조체의 채플은 그 자체로 조각물과 같은 느낌이다. 내부에 들어가게 되면 채플은 성스럽기까지 한 감동의 공간으로 바뀐다.
창이 없는 벽돌로 만들어진 어두컴컴한 원통형의 공간에 천장에서 내려오는 강한 빛 한줄기가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빛은 베르토이라는 금속공예가가 설계한 천창 아래 매달린 수많은 조그마한 금속판넬 조각들에 의해 산란되며 빛의 존재를 증폭시킨다.
원형공간을 감싼 벽돌벽 아래는 뚫려져 있어 바깥의 연못을 통해 반사하여 들어오는 빛이 파도 모양으로 요철을 가진 벽돌벽에 반사되며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태리 대리석인 베이지색의 밝은 트라버틴으로 마감된 바닥은 어두운 벽면과 대조되며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며, 높은 열에 구워질 때 울퉁불퉁 거친 질감을 갖게 된 클링커 벽돌은 자연스러운 맛을 더하여 준다.
에로 사리넨은 젊은 시절 그리스 여행을 하며 캄캄한 밤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달빛과 지상의 연한 불빛이 이 세상을 초월하는 어떤 느낌으로 이끄는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어두움 속에서 건물 위에 작지만 강한 빛의 천창과 아래로부터의 물에 비친 은은한 역광이 공간의 깊은 감응을 불러 일으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하늘과 바다로 구현한 ‘비움의 미(美)’
감응과 멍때림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듯이 MIT 채플과 비슷한 목표를 가졌으면서도 사뭇 다른 방식으로 디자인된 재미있는 채플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2023년 한국건축가협회에서 선정한 우리나라의 대표 건축물 7개 안에 뽑힌 강화도의 멍때림 채플이다. 경희대 건축학과 이은석교수의 작품이다.
채플 안에 들어서면 전면으로 단아한 스테인드 글라스(정경미 작품) 창들이 눈에 들어오고, 노출 콘크리트 벽속에 파묻힌 파이프오르간을 뒤로하고 정면을 바라보면, 강화도 앞 바다가 보일 듯 말 듯 한 높이의 긴 수평창이 회색 빛의 하늘과 바다를 오랜시간 멍하니 바라보게 만드는 곳이다. 파이프오르간이라도 연주가 되면 악기의 울림통 속에 들어와 있는 듯 작은 채플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이 건물은 정방형의 사각형 건물이기에 모서리와 4개의 면이 있어 원형의 건물과는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다. 사각뿔인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처음 자리를 잡을 때 분명 바닥의 사각면을 어떤 이유에서건 방향을 맞췄으리라 생각된다. 사막지역 이기에 특별한 지형지물이 없었으므로 피라미드는 사막의 강렬한 해가 뜨는 방향에 맞춰 지었거나, 나일강에 평행하게 면하게 지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멍때림 채플은 산을 뒤로하고 바다를 전면으로 하여 분명한 방향성이 있는 공간이기에 사각형으로 적용한 것이다.
MIT 채플과 멍때림 채플은 원형과 정사각형이라는 형태적 순수성을 갖지만, 사람들에게 어필되는 것은 왜소한 형태에 비해 진한 감동을 주는 그 내부의 공간이다. 그 형태 안에 그 형태와 닮은 내부공간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되지만, 그 안에서의 느낌을 상상하는 것은 전문가들도 쉽지 않다. 물체의 크기는 커 보이고, 비워진 부분의 크기는 작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형, 삼각형, 정사각형 등 기하학적으로 순수한 공간은 인간에게 원초적인 감응을 불러 일으키는 강한 임팩트를 주기 때문이다. 또한 두 건물 모두 회랑을 거쳐 들어가면서 내부공간에 대한 기대값을 증폭시켜주는 효과도 있다.
두 건물의 다른 점은 MIT 채플은 건축가가 원하는 분위기 창출을 위해 고도로 디자인된 수법들, 폐쇄된 공간 속의 조그만 천창, 조형물, 파도치는 벽, 반사광 등 인위적 수법들을 사용하여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서양식 도구주의가 작용했다면, 멍때림 채플은 비워진 공간에 전면의 큰 창을 통해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건물의 디자인 요소보다는 외부의 환경이 드러나 보이도록 하여 비움의 동양철학이 적용되었다고 생각된다.
이 두 개의 자그마한 채플은 세상의 번거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며, 연주회나 추모식이 열린다면 그 행위의 본질에 우선해서 무드를 고양시켜 주는 공간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기독교의 개혁이후 공간의 신성함을 통해 영성을 일깨우는 것을 비판해왔다고는 하지만, 어떤 공간은 분명 목적과 상관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어 보인다.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