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국장은 못믿겠다'는 투자자들
장면 1. 올해 1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벽두부터 한국거래소로 향했다. 그 자리에서 금융투자소득세가 증시 발전을 가로막는다며 폐지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시장은 뜨겁게 반응했을까. 정반대였다. 코스피지수는 이후 11일간 9% 가까이 하락했다. 금투세가 정말 폐지될지를 놓고 시장은 반신반의했다. 개인들은 혹시 세금을 물게 될까 봐 펀드 환매에 나섰고, 증권사들은 수십억원을 들여 금투세 대응 시스템을 구축했다. 혼란은 10개월 넘게 이어지다가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금투세 폐지 결론을 내자 그제야 일단락됐다.

장면 2. 지난 7월 25일. 두산그룹주들이 금융감독원발 악재에 일제히 추락했다. 두산그룹은 지배구조 개편 차원에서 계열사 합병을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이날 금감원이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자 “금융당국이 합병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이후에도 두산그룹주들은 추가 정정 요구에 동반 하락하는 등 금감원 발표와 이복현 금감원장의 입에 따라 출렁였다. 그 학습 효과는 고려아연에서도 나타났다. 고려아연은 얼마 전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한 직후 주가가 추락했지만 다음 날부터 반등에 나섰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증자에 성공할지는) 금감원 얘기부터 들어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다.

줄줄이 밀리는 증시 부양책

요즘 주식시장이 이렇다. 정부가 야심 차게 증시 부양책을 발표해도, 기업들이 경영 계획을 내놔도 투자자들은 ‘과연 될까?’ 하는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정부는 원내 과반 의석수를 차지한 야당의 허가를 구해야 하고, 기업은 금융당국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다. 그렇게 무산되거나 차일피일 미뤄진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초 증시 밸류업 정책의 핵심 사안으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한도를 대폭 늘리겠다고 했지만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토큰증권발행(STO)도, 기업공개(IPO) 시장 안정화를 위해 추진하겠다던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도, 개인이 공모펀드를 통해 비상장 벤처 투자를 할 수 있게 하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도 여야 정쟁에 밀려 기약이 없다. 미리 준비했던 기업과 투자자만 고생 중이다.

기업들엔 '정정 신고서' 폭탄

금융당국이 기업 경영 판단을 제동하는 일도 숱하다. 작년까지 지난 9년간 금감원이 기업에 정정신고서를 요구한 사례는 단 2건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10개월여 만에 벌써 15건이다. 기업의 합병과 분할, 증자 등 민감한 경영 계획은 죄다 금융당국 허락을 구해야 하는 분위기다. 그렇게 야당과 금융당국 입장에 따라 주가지수와 개별 기업 주가가 휘청인다. ‘국장(국내 증시)은 못 믿겠다’는 말이 시장에 유행처럼 번지는 데는 그 정책 리스크가 한몫했다.

코스닥지수와 코스피지수는 올해 전 세계 주요 지수 중 하락률 1, 2위를 달리고 있다. 기업 가치를 높이고 수급 기반을 확충해야 하는 등 구조적 문제들이 산적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자본시장에 쌓이는 이 불신부터 걷어내는 게 필요하다. 올해 남은 50여 일 동안 ISA 개선, STO 도입 등 자본시장 관련 정책만이라도 여야가 전향적으로 풀어보길. 그리고 금융당국은 시장과 기업을 통제하겠다는 그 과도한 의욕을 줄여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