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한 것은 ‘매노스피어(manosphere·남초 커뮤니티)’의 지지 덕분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비주류로 치부되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할 정도로 젊은 남성 유권자의 환심을 사는 데 공을 들였고, 조 바이든 정부 들어 민주당에 불만이 커진 청년층이 이에 화답했다는 것이다. 유럽에선 20대 남성이 강경우파 정당의 핵심 지지 세력으로 떠오르는 등 ‘젊은 세대는 좌파를 지지한다’는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6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지지자들이 폭스뉴스의 트럼프 대선 승리 보도 직후 열광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지지자들이 폭스뉴스의 트럼프 대선 승리 보도 직후 열광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흑인 이대남도 공화당 지지 급증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9일(현지시간) 대선 개표 중인 애리조나주에서 승리를 확정하며 선거인단 11명을 마지막으로 확보했다. 최종적으로 선거인단 538명 가운데 312명을 확보해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226명)를 이겼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막내아들인 배런 트럼프가 아버지를 남초 커뮤니티에 연결했다’는 기사로 트럼프 당선인의 주요 지지 세력인 젊은 남성 문화를 조명했다. 음담패설과 폭력, 거친 장난 등 온라인 콘텐츠를 즐기며 비디오 게임과 암호화폐에 관심이 많은 젊은 남성의 이른바 ‘브러돔’(형제집단)이 트럼프 당선인의 핵심 지지 세력이란 설명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8월 배런의 권유로 유명 게임 스트리머 애딘 로스의 라이브방송에 출연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오랜 친구인 데이나 화이트 종합격투기단체 UFC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젊은 남성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인물도 트럼프 지지를 호소했다.

트럼프의 구애는 젊은 남성의 투표로 이어졌다. CNN과 NBC 등의 합동 출구조사에선 18~29세 남성의 트럼프 지지율이 49%, 30~44세 남성은 53%로 해리스를 앞섰다. 2020년 같은 조사에서 두 연령대의 트럼프 지지율은 각각 46%, 50%였다. AP통신이 대선 당일까지 8일간 실시한 설문조사(AP보트캐스트)에선 더 극명한 차이를 나타냈다. 30세 미만 남성의 트럼프 지지율은 56%로 해리스 지지율보다 14%포인트 높았다. 지난 대선과 비교하면 흑인 18~29세 남성의 공화당 지지율이 11%에서 31%로, 라틴계는 25%에서 38%로 급등했다.

시대 못 따라가는 좌파 정당

젊은 남성을 중심으로 한 탈좌파 현상은 유럽에서도 이미 두드러지고 있다. 젊은 남성은 유럽 강경 우파의 핵심 지지 세력이다. 이탈리아 핀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체코 등 6개국에선 정권을 탈환했고 네덜란드도 자유당 주도로 연정이 꾸려졌다. 프랑스 국민연합(RN)도 29세 남성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를 내세워 지난 7월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에서 불법 이민자들이 밀려들어 저소득층 임금 하락, 치안 악화 등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가운데 상당수 좌파 정당은 ‘인권 보호’를 명목으로 불법 이민 차단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벨기에 프랑스 포르투갈 독일 핀란드에서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가 고령자보다 많다”고 진단했다.

이대남들의 보수화에는 기성세대의 여성 우대로 자신들은 역차별받는다는 인식이 작용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 젊은(25~34세) 여성은 50% 가까이 대학 학사학위를 보유했지만 남성은 대졸 이상 비율이 37%에 불과하다. 미국 보수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는 “젊은 남성들은 경제적·정치적으로 소외돼 있다”며 “이 때문에 트럼프가 발산하는 거침없는 남성다움에 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좌파·중도 정당에 대한 불신도 팽배한 상황이다. 고물가 등 경제 문제엔 해답을 내놓지 못하면서 먹고사는 데 무관한 환경운동이나 성적소수자에 대한 과도한 보호 등 PC주의(정치적 올바름)만 강요한다는 불만이다. 로베르토 포아 영국 케임브리지대 미래민주주의센터 이사는 “주택 구입과 창업, 부의 축적과 같은 삶의 기회에 대한 세대 간 격차가 상당하다”며 “젊은이들은 자신의 부모보다 더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