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장하는 의협회장 >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10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을 빠져나오고 있다. 그는 이날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불신임받아 취임 6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이솔 기자
< 퇴장하는 의협회장 >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10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을 빠져나오고 있다. 그는 이날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불신임받아 취임 6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이솔 기자
올해 2월 이후 10개월가량 이어진 의정 갈등 사태가 새 국면을 맞았다. 의료계 수장 역할을 해온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0일 불명예 퇴진하면서다. 신임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 당분간 의료계는 ‘리더십 공백’ 상황을 맞게 됐다. 임 회장 퇴진이 이번 사태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의료계에선 정부가 제시하는 ‘당근책’에 따라 사태 향방이 요동칠 것으로 내다봤다.

‘막말 논란’에 물러나는 의협회장

임 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데엔 전공의, 의대생 등 젊은 의사들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크게 작용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등은 성명을 통해 의협이 전공의들의 투쟁 동력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다고 비판해왔다. 의대생들도 이런 전공의들의 입장에 힘을 보탰다. 원로 의료인들은 임 회장이 개인 SNS 등을 통해 거친 언사로 ‘막말 논란’을 빚으면서 의료계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지적해왔다. 임 회장 불신임이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의협 대의원들은 이날 임 회장을 불신임하며 새 회장이 뽑힐 때까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자고 합의했다. 임현택 집행부가 하루빨리 떠나는 게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표를 던진 것이다.

의료계는 의정 사태 해결을 위한 새 리더십 구성이란 숙제를 떠안게 됐다. 의협은 13일까지 비대위원장 선거를 마칠 계획이다. 신임 협회장 선거는 연말 안에 치를 계획이다. 비대위원장은 신임 협회장 선출 전까지 의료계를 이끌게 된다. 의료계 관계자는 “비대위원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이후 회장 선거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며 “의료계 ‘새판 짜기’가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당분간 의료계 혼선 불가피

의사협회에 새 집행부가 출범할 때까지 당분간 의료계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1일 시작되는 여야의정협의체도 당분간 실효성을 높이긴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의협에 새 집행부가 꾸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것은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회)가 참여 선언을 했지만 이들이 의료계를 대표한다고 보기엔 한계가 있다. 결국 새 의협 집행부와 전공의들의 태도에 달렸다는 것이다. 새로 구성될 비대위의 협의체 참여 여부에 대해 김택우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장은 “이후 구성되는 비대위 회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협의체 참여 여부를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했다.

의료계에선 새 리더십 선출 전까지 정부가 어떤 대안을 제시하느냐에 사태 해결의 향방이 달렸다고 평가했다. 의료계가 새판 짜기에 들어간 만큼 정부가 태도 변화를 보인다면 협상의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의정 대화 조건으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해체 등이 거론되고 있다.

사태 향방은 미지수

‘강경 투쟁’을 외치는 일부 전공의에게 힘이 쏠리면 의료 공백 사태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부 전공의는 대학병원을 지키는 교수들도 환자 곁을 떠나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6~8일 서울대의대 비상대책위원회 집행부가 재신임 투표에 나선 것도 ‘지나치게 온건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전공의들의 비판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비대위를 재신임하며 이런 목소리를 일축했다.

의료계에선 2025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 조정 등의 방식으로 내년도 의대생 수를 조정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당초 정부가 계획한 증원 인원 2000명을 대학별 모집요강 발표를 통해 1509명으로 바꾼 것처럼 대학별 모집인원을 조정하면 증원 규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물론 의료계 내부에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10만 명 넘는 의대 지원자의 피해가 불가피해서다. 결국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은 2026학년도 증원안밖에 없다는 분석이 잇따르는 이유다.

이지현/남정민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