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는 조치인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각국이 미국의 '보복 관세'를 우려해 구글 및 메타 등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의 조세 회피를 제재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 있어서다.

美 트럼프 2기 행정부에 OECD '최저한세' 도입 주저하는 세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현지시간) 전문가를 인용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가 위험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고율 관세 정책을 예고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보복 관세'로 대응할 가능성을 우려해, 각국이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라스무스 콜린 크리스텐슨 코펜하겐 경영대학원 국제 세무 연구원은 "(미국) 새 정부의 선호도를 감안할 때, '징벌적 관세'가 가장 가능성 있는 선택지라고 생각한다"고 FT에 설명했다.

필라 2로 알려진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는 글로벌 매출이 1조원 이상인 다국적 기업이 해외에서 15% 미만의 세금을 낼 경우 모회사가 있는 국가에서 15%에 못 미치는 부족분을 추가 과세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이는 다국적 기업이 저율 과세 국가를 찾아다니며 조세를 회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2021년 10월 OECD에서 합의된 이후, 한국, 유럽연합(EU), 영국, 노르웨이 호주, 일본, 캐나다 등은 1월부터 소득산입규칙(IIR)에 근거해 이 제도를 시행했다.

FT는 OECD 조세 협정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라 2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의 본사가 있는 국가가 저율 과세를 할 경우, 다른 국가들은 소득산입보완규칙(UTPR)에 따라 기업이 자국에서 올린 매출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어서다. 모기업 소재국의 실효세율이 15% 미만이거나 IIR을 적용하지 않은 경우에만 UTPR에 따른 세금 부과가 가능하다. OECD는 필라2로 연간 세수가 전 세계적으로 최대 9%에 달하는 2200억달러(약 397조원)가 늘어날 수 있다고 추산했다.

트럼프 1기 때도 '301조' 내밀었는데필라1·2 도입 차질 난항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에는 각국이 UTPR은 물론이고 IIR마저도 섣불리 도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인 택스 파운데이션의 최고경영자(CEO)인 다니엘 번은 "새로운 미국 행정부에서는 UTPR을 시행하는 관할권에 대한 비판과 잠재적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측 인사들은 바이든이 미국을 겨냥한 OECD의 해당 조세 협정을 옹호했다며 비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는 OECD의 조세 협정을 옹호했지만, 공화당의 저항으로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미국 하원 재정위원장인 공화당의 제이슨 스미스 의원은 지난해 5월 이를 두고 "바이든의 세계적 세금 포기"라고 성명을 내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다른 국가들이 OECD 협정을 통해 향후 10년 동안 1200억달러가 넘는 미국의 세수를 뽑아내는 것을 그냥 지켜보지 않겠다"고 말했다. 스미스 의원은 필라 2에 대응해 미국에 차별적인 세금 정책을 채택하는 국가에 본사를 둔 기업을 상대로 세율을 대폭 인상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필라2와 함께 합의된 필라1에도 시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세로 불리는 필라1은 다국적 기업이 본사 소재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매출을 냈을 경우 이 국가에도 세금을 내도록 강제하도록 하는 조약이다. 고정사업장이 없어 과세하지 못했던 빅테크에도 과세권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다. 필라1은 필라2에 비해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 OECD에서 필라1을 발효하기 위해서는 주요 빅테크가 본사를 두고 있는 미국의 동의가 필수적인데, 지난해 미국은 연내 비준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도 트럼프가 집권하며 비준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20년 EU, 영국, 브라질 등이 디지털 서비스세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에 대응해 이들 11개국에 대한 301조 조사를 시행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1974년 통상법 301조를 근거로 조사 후 해당국의 디지털 서비스세가 미국 기업을 불공정 차별 대우한다고 인정될 경우 미국 정부는 관세 부과 등 보복 조치를 강행할 수 있다.

일부 국가들은 보복 관세 위험에도 불구하고 디지털세나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전망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 7일 필라1을 EU 내에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캐나다는 OECD에서 필라1 합의가 늦어지자, 지난 6월부터 디지털 서비스세를 도입했다. 글로벌 매출이 1조원 이상이면서 캐나다에서 거둔 연 매출이 2000만캐나다달러(약 200억원)를 초과할 경우 캐나다 발생 매출의 3%를 세금으로 매기는 내용이 골자다.

김세민 기자 unija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