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재즈음악가 빌 에반스는 끝내 우물 속으로 빨려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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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봉호의 원픽! 재즈 앨범
음악이 우물에 빠진 날, 재즈의 시인 빌 에반스
Bill Evans 앨범 'You Must Believe In Spring'
음악이 우물에 빠진 날, 재즈의 시인 빌 에반스
Bill Evans 앨범 'You Must Believe In Spring'
나는 전학생 출신이었다. 새로운 학교에 가는 날, 어머니는 동급생에게 반찬을 양보하라고 말했다. 그래야 빨리 친구를 사귄다는 충고도 덧붙였다. 지금처럼 학교 급식 체계가 없던 시대라 도시락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필수 지참물이었다. 당시 학급에는 필자보다 잘사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집도, 옷도, 신발도, 반찬도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중학생 아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부유한 친구들로 인해 학교생활이 힘드냐는 내용이었다. 별로 힘들지 않다는 필자의 눈을 오래도록 응시하던 당신이 떠오른다. 학급에는 용돈으로 음반을 구입하는 친구들이 일부 있었다. 당연히 필자에게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반목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부러운 감정은 시기와는 별개의 영역이니까. 나는 그들과 친해졌고 덕분에 새로운 음악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도 주머니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집에 전축 자체가 없으니 음반을 욕심낼 일이 없었다. 국산 라디오와 친구들이 녹음해준 공테이프로 좋아하는 음악을 접하는 일과가 전부였다. 그래서였을까. 20대부터 학창 생활과 별개로 돈을 벌었다. 여기에 대학에서 받은 4번의 장학금을 합쳐 금융상품에 투자했다. 그렇게 불린 돈으로 인켈 오디오를 구입하고 레코드와 시디를 모았다. 투자의 방식은 지금도 여전하다.
본격적으로 음반을 수집한 시기는 신입사원 시절부터였다. 새벽에 직접 도시락을 싸서 회사로 출근했다. 점심값을 아끼면 라이선스 음반 1장에 준하는 돈이 생겼다. 근면 검소를 평생의 미덕으로 삼았던 부모님의 영향일까. 선택적 지출이라는 경제 관념은 지금도 여전하다. 대학원은 40대부터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마쳤다. 물론 필자에게 경제적 혜택을 준 지인에게 그 이상의 답례를 하는 일상은 변함없다.
지금이야 음반 수집이 감상의 필수 요건은 아니다. 하지만 20세기는 전작 수집의 어려움이 상존했던 시기다. 언급한 전작 수집의 넘사벽에 속하는 재즈 연주자가 빌 에반스(Bill Evans)다. 제주도에서 엘피 바를 하는 분이 내 페이스북에 이런 댓글을 달았더라. 발표작의 매력이 고만고만하면서 컬렉팅이 방대한 영역이 바로 재즈라고. 바로 공감 버튼을 누르면서 떠오른 연주자 중 1인이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였다. 빌 에반스의 발표작은 협연 앨범을 포함해서 90여 장에 이른다. 여기에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를 포함한 밴드 멤버의 음반을 추가하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렇기에 주변에서 “나는 빌 에반스 전작 수집가”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를 마주친 적이 아직 없다. 그렇다고 빌 에반스의 음악 세계를 심하게 비판하는 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재즈 덕후가 아니라도 무난하게 접근이 가능한 스타일리스트가 바로 빌 에반스다.
그는 6세 무렵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배운다. 10대에는 플루트와 바이올린을 배워 다중 악기 주자로서의 재능을 습득한다. 재즈연주자로 날짓을 시작한 때는 20대 초반 무렵이었다. 당시 그는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와 3개월간 연주활동을 펼친다. 시카고와 뉴욕 등지에서 라이브 연주자로 경력을 쌓은 빌 에반스는 매네스 음대(Mannes School of Music)에서 작곡 전공자로 석사과정을 마친다. 이후 그는 클래식 너머의 세상으로 시선을 돌린다. 서드 스트림(Third Stream)이라는 용어는 음악가 건서 슐러(Gunther Schuller)가 언급한 용어다. 클래식을 제1의 흐름으로, 재즈를 제2의 흐름으로 하여 양자가 합쳐진 새로운 재즈를 의미하는 서드 스트림을 대표하는 연주자가 빌 에반스다. 1956년 데뷔 앨범 <New Jazz Conceptions>를 발표한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짐 홀(Jim Hall) 등과의 협연을 통해 자신만의 재즈 스타일을 다져 나간다. 빌 에반스는 1970년대부터 서드 스트림의 사정권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Bill Evans - Conception (Album Version)]
<You Must Believe In Spring>은 1977년에 녹음한 앨범이다. 빌 에반스 디스코그래피를 언급할 때 1950~60년대 발표작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격정을 세월을 버티면서 완성한 후기 작품에서 드러나는 피아니즘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앨범에서는 초기작보다 빠르고 열정적인 템포의 곡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느린 연주를 추구하는 경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연주를 들려준다. 빌 에반스는 트리오 형태의 앨범을 지속해 발표한다. 하지만 약물 중독이 빌 에반스를 우물 속으로 끌어 내리고 있었다. 빛나는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 여정은 그리 길지 못했다. 빌 에반스는 1980년 9월 15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친구 진 리즈(Gene Lees)는 피아니스트의 생의 절반을 지배한 약물 중독을 ‘역사상 가장 긴 자살’이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팻 메스니(Pat Metheny)와 라일 메이스(Lyle Mays)는 ‘September 15th’라는 곡으로 천재 피아니스트를 추모한다. <You Must Believe In Spring>은 빌 에반스 사망 이후 발매된다.
[Pat Metheny · Lyle Mays - September Fifteenth]
[B Minor Waltz (For Ellaine)]
이봉호 문화평론가
어머니는 중학생 아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부유한 친구들로 인해 학교생활이 힘드냐는 내용이었다. 별로 힘들지 않다는 필자의 눈을 오래도록 응시하던 당신이 떠오른다. 학급에는 용돈으로 음반을 구입하는 친구들이 일부 있었다. 당연히 필자에게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반목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부러운 감정은 시기와는 별개의 영역이니까. 나는 그들과 친해졌고 덕분에 새로운 음악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도 주머니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집에 전축 자체가 없으니 음반을 욕심낼 일이 없었다. 국산 라디오와 친구들이 녹음해준 공테이프로 좋아하는 음악을 접하는 일과가 전부였다. 그래서였을까. 20대부터 학창 생활과 별개로 돈을 벌었다. 여기에 대학에서 받은 4번의 장학금을 합쳐 금융상품에 투자했다. 그렇게 불린 돈으로 인켈 오디오를 구입하고 레코드와 시디를 모았다. 투자의 방식은 지금도 여전하다.
본격적으로 음반을 수집한 시기는 신입사원 시절부터였다. 새벽에 직접 도시락을 싸서 회사로 출근했다. 점심값을 아끼면 라이선스 음반 1장에 준하는 돈이 생겼다. 근면 검소를 평생의 미덕으로 삼았던 부모님의 영향일까. 선택적 지출이라는 경제 관념은 지금도 여전하다. 대학원은 40대부터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마쳤다. 물론 필자에게 경제적 혜택을 준 지인에게 그 이상의 답례를 하는 일상은 변함없다.
지금이야 음반 수집이 감상의 필수 요건은 아니다. 하지만 20세기는 전작 수집의 어려움이 상존했던 시기다. 언급한 전작 수집의 넘사벽에 속하는 재즈 연주자가 빌 에반스(Bill Evans)다. 제주도에서 엘피 바를 하는 분이 내 페이스북에 이런 댓글을 달았더라. 발표작의 매력이 고만고만하면서 컬렉팅이 방대한 영역이 바로 재즈라고. 바로 공감 버튼을 누르면서 떠오른 연주자 중 1인이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였다. 빌 에반스의 발표작은 협연 앨범을 포함해서 90여 장에 이른다. 여기에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를 포함한 밴드 멤버의 음반을 추가하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렇기에 주변에서 “나는 빌 에반스 전작 수집가”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를 마주친 적이 아직 없다. 그렇다고 빌 에반스의 음악 세계를 심하게 비판하는 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재즈 덕후가 아니라도 무난하게 접근이 가능한 스타일리스트가 바로 빌 에반스다.
그는 6세 무렵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배운다. 10대에는 플루트와 바이올린을 배워 다중 악기 주자로서의 재능을 습득한다. 재즈연주자로 날짓을 시작한 때는 20대 초반 무렵이었다. 당시 그는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와 3개월간 연주활동을 펼친다. 시카고와 뉴욕 등지에서 라이브 연주자로 경력을 쌓은 빌 에반스는 매네스 음대(Mannes School of Music)에서 작곡 전공자로 석사과정을 마친다. 이후 그는 클래식 너머의 세상으로 시선을 돌린다. 서드 스트림(Third Stream)이라는 용어는 음악가 건서 슐러(Gunther Schuller)가 언급한 용어다. 클래식을 제1의 흐름으로, 재즈를 제2의 흐름으로 하여 양자가 합쳐진 새로운 재즈를 의미하는 서드 스트림을 대표하는 연주자가 빌 에반스다. 1956년 데뷔 앨범 <New Jazz Conceptions>를 발표한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짐 홀(Jim Hall) 등과의 협연을 통해 자신만의 재즈 스타일을 다져 나간다. 빌 에반스는 1970년대부터 서드 스트림의 사정권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Bill Evans - Conception (Album Version)]
<You Must Believe In Spring>은 1977년에 녹음한 앨범이다. 빌 에반스 디스코그래피를 언급할 때 1950~60년대 발표작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격정을 세월을 버티면서 완성한 후기 작품에서 드러나는 피아니즘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앨범에서는 초기작보다 빠르고 열정적인 템포의 곡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느린 연주를 추구하는 경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연주를 들려준다. 빌 에반스는 트리오 형태의 앨범을 지속해 발표한다. 하지만 약물 중독이 빌 에반스를 우물 속으로 끌어 내리고 있었다. 빛나는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 여정은 그리 길지 못했다. 빌 에반스는 1980년 9월 15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친구 진 리즈(Gene Lees)는 피아니스트의 생의 절반을 지배한 약물 중독을 ‘역사상 가장 긴 자살’이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팻 메스니(Pat Metheny)와 라일 메이스(Lyle Mays)는 ‘September 15th’라는 곡으로 천재 피아니스트를 추모한다. <You Must Believe In Spring>은 빌 에반스 사망 이후 발매된다.
[Pat Metheny · Lyle Mays - September Fifteenth]
[B Minor Waltz (For Ellaine)]
이봉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