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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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수용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적힌 징벌 보고서에 손도장 찍기(무인)를 거부한 행위를 징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헌법상 기본권인 진술거부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A씨가 대구교도소장을 상대로 낸 징벌처분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25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에 헌법상 진술거부권에서 진술의 의미, 적발 보고서에 대한 무인 요구행위의 진술거부권 침해에 관한 법리 오해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A씨는 2020년 3월 부산구치소에 구속된 후 진주교도소를 거쳐 2021년 9월부터 현재까지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는 2022년 3월 어느 날 아침 미결 수용동 거실에서 수감자 B씨와 이불을 정리하는 문제로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다 다른 수용자들로부터 "B씨가 하는 방식이 맞는 거 같은데요"라는 말을 듣고 격분해 B씨를 비롯한 다른 수감자들에게 욕설하며 말다툼해 소란을 피웠다.

교도관은 같은 날 오후 소란행위를 한 사실에 대해 징벌대상행위 적발 보고서를 발부하며 A씨에게 무인을 찍으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A씨는 교도관에게 큰 소리로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생활하다 보면 말다툼을 할 수도 있는데 왜 무인을 찍느냐. 나는 안 찍는다."며 고함을 지르며 거부했다. 교도관은 재차 적발 보고서에 무인을 찍으라고 지시했으나, A씨는 "일이나 똑바로 하라"고 고함을 지르는 등 교도관의 수용관리 업무를 방해했다.

대구교도소는 징벌위원회 의결을 거쳐 A씨에게 금치 20일 처분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A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A씨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이불 정리 문제로 다른 제소자와 말다툼을 하다가 소란 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원고가 교도관의 적발보고서에 대한 무인 요구를 거부한 것이 정당한 사유 없이 교도관의 직무상 지시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교도관의 직무를 방해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수용자에게 적발 보고서에 서명 또는 무인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적발 보고서에 기재된 규율위반행위를 사실상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며 "헌법 제12조 제2항이 규정한 진술거부권은 형사절차뿐만 아니라 행정절차 등 어디에서나 그 진술이 자기에게 형사상 불리한 경우에는 묵비권을 가지고 이를 강요받지 아니할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용자는 교도관이 작성한 적발 보고서의 규율위반행위를 부인하며 위 적발 보고서에 무인을 요구하는 교도관의 지시를 거부할 헌법상의 권리가 있다"며 "그런데도 무인을 강요하는 것은 자기부죄 금지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대구교도소 측은 항소했으나 2심에 이어 대법원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