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키드>를 공연하는 런던 아폴로 빅토리아 극장 / 사진. © ATG Entertainment Limited All rights reserved.
뮤지컬 <위키드>를 공연하는 런던 아폴로 빅토리아 극장 / 사진. © ATG Entertainment Limited All rights reserved.
원작 <오즈의 마법사>를 향한 근원적 질문 “왜?”

1939년 빅터 플래밍 감독(Victor Lonzo Fleming)은 라이먼 프랭크 바움(Lyman Frank Baum)의 원작 소설 <오즈의 마법사(The Wonderful Wizard of Oz (1900)> 를 바탕으로 동명의 뮤지컬 판타지 영화를 만들었다. 여배우 주디 갈런드(Judy Garland)가 영화의 주연을 맡고, OST 수록곡 <Over the Rainbow>도 노래해 대성공을 거뒀고, 영화의 클래식으로 자리잡았다.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게일' 역을 맡은 주디 갈런드(Judy Garland) / 사진출처. © IMDb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게일' 역을 맡은 주디 갈런드(Judy Garland) / 사진출처. © IMDb
<오즈의 마법사>는 캔자스의 시골마을의 소녀 도로시가 숙부-숙모와 살다가 토네이도에 휩쓸려 마법의 대륙 오즈에 떨어진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펼치는 모험이야기다.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에메랄드 시에 사는 위대한 마법사를 찾아가고, 그 여정에서 똑똑하길 원하는 허수아비, 심장을 필요로 하는 양철 나무꾼, 그리고 겁쟁이 사자를 만난다. 오즈의 마법사는 ‘사악한 서쪽 마녀 (Wicked Witch of the West)’를 쓰러뜨리면 모두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도로시 일행은 위험한 순간에 맞서 힘을 합쳐 서쪽 마녀를 무찌른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1939) 스틸컷 / 사진출처. © IMDb
영화 '오즈의 마법사' (1939) 스틸컷 / 사진출처. © IMDb
미국 작가 그레고리 맥과이어(Gregory Maguire)는 ‘소설 <오즈의 마법사>에서 서쪽의 초록마녀는 왜 나쁜 마녀가 되었는가?’ 라는 의문에서 출발해서 상상의 나래를 펴, 1995년 오즈의 세계관을 확장한 소설 <위키드>를 발표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프리퀄로 만들어진 이 소설은 6권의 시리즈로 발표되고,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다.

소설 <위키드>에서 그레고리 맥과이어는 에메랄드 시 같은 찬란한 세계 이면에 어둡고 힘든 현실과 부조리함을 대범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인종·소수인 차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종교의 맹목적인 믿음, 그리고 집단의 부조리함에 대해 염세적인 문체로 비판했다.

암울하고 시니컬한 소설의 문체와 달리 뮤지컬 <위키드>는 밝고 명랑한 노래와 분위기로 태어났다. 소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뮤지컬에서 너무 무겁지 않게 위트와 풍자로 살렸다.
뮤지컬 <위키드> 공연 모습 / 사진출처. Wicked UK 페이스북
뮤지컬 <위키드> 공연 모습 / 사진출처. Wicked UK 페이스북
다른 피부색과 능력을 가진 초록마녀 ‘엘파바’는 애초 착한 소녀였지만, 오즈의 부패한 정권으로 인해 사악한 인물로 변질되었다는 내용이 주축인데, 엘파바와 글린다(선한마녀)의 우정과 성장 스토리를 아름다운 멜로디와 함께 풀어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스티브 슈왈츠(Stephen Schwartz)가 음악과 가사를 만들고, 위니 홀츠만(Winnie Holzman)이 극본을 썼다. 2003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후, 2006년에는 영국 웨스트엔드, 2012년에는 한국 등으로 수출되었다. 뮤지컬 <위키드>는 의상 제작비만 35억 원, 총 제작비가 130억원 정도 들어간 대작이다. 주인공 여성 두 명이 극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끌고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피에로에 성소수자 흑인 캐스팅
강렬했던 1막의 클라이막스 <Defying Gravity>
노래를 빈번하게 대사로 처리한 것은 아쉬워


뮤지컬 <위키드>를 관람하는 아폴로 빅토리아 극장에 거의 다 왔을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0월 초 런던에 머무는 동안 한번도 비가 오지 않아 이 도시가 전과 같지 않게 느껴졌는데 빗줄기와 함께 스산한 기운이 돌자 곧 그 익숙한 런던의 본색을 찾은 것 같았다. 음울하기까지 한 분위기였는데, 극장 전면에서 초록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WICKED” 라는 글자가 빗방울에 난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마치 소설 <위키드>가 뮤지컬로 탄생한 과정을 날씨가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무대를 가리는 대형 가림막에는 에메랄드 시를 중심으로 한 오즈의 지도가 그려져 있고 초록 광선이 물결치듯 에머랄드 시를 비추고 있다.
오즈의 지도를 펼쳐 놓은 가림막 / 사진. © 이진섭
오즈의 지도를 펼쳐 놓은 가림막 / 사진. © 이진섭
무대 위에 자라집은 타임드래곤이 머리를 움직이며, 뮤지컬의 시작을 알리고, 오즈의 시민들과 글린다가 <No One Mourns the Wicked> 를 함께 부른다. 엘파바의 고독한 삶을 간략하게 언급하는 이 대목을 지나, 과거 회상 시점으로 접어들어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왼쪽) 글린다, (오른쪽) 엘파바 / 사진. © Matt Crockett
(왼쪽) 글린다, (오른쪽) 엘파바 / 사진. © Matt Crockett
엘파바를 열연한 알렉시아 케다임(Alexia Khadime)과 글린다 역의 루시 세인트 루이스(Lucy St. Louis)는 호흡이 척척 맞았다. 이 둘이 사랑한 피에로 역할을 라이언 레이드(Ryan Reid)가 했는데, 이 배역에 주로 백인을 캐스팅했던 과거와 달리 성소수자 흑인을 택한 것이 과감한 시도 같았다. 1막 마지막 부분 엘파바가 무대 위로 날아오르며 부르는 <Defying Gravity>은 뮤지컬 <위키드>가 이 순간만을 향해 달려온 듯 환상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Defying Gravity> 공연 장면 / 사진. © Matt Crockett
<Defying Gravity> 공연 장면 / 사진. © Matt Crockett
푼수 같은 모습에 사랑스러운 명랑함이 돋보이는 글린다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곡 <Popular>에서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루시 세인트 루이스의 능수능란함에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특히,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을 담은 듀엣곡 <For Good> , <What is feeling> 등에서 두 배우의 앙상블은 에메랄드처럼 빛났다. 단, 과한 기교로 뮤지컬의 본질인 음악과 가사의 조화가 깨진 것과 아름다운 멜로디를 살려도 될 부분을 대사로 처리한 것은 아쉬웠다.
공연을 마치고 관객에게 인사하는 배우들 / 사진. © 이진섭
공연을 마치고 관객에게 인사하는 배우들 / 사진. © 이진섭
뮤지컬 <위키드> 엔지니어 룸 / 사진. © 이진섭
뮤지컬 <위키드> 엔지니어 룸 / 사진. © 이진섭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낸 <위키드>
11월 영화 <위키드>로 만난다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의 ‘WICKED’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내고, 대중의 꿈과 환타지를 자극하는 것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뮤지컬 <위키드>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이번에 관람한 런던 공연(24년 10월 공연)은 예전에 뉴욕(2012/13/14, 3회), 런던(2008/2009/2014, 3회)에서 보았던 캐스팅에 비해 흡족하진 않았지만, <위키드>의 흡입력은 여전했다. 11월 개봉하는 영화 <위키드>에서 신시아 에리보(Cynthia Erivo)와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가 연기한 엘파바와 글린다도 기대가 된다.
뮤지컬 <위키드>의 글린다와 엘파바 / 사진. © 이진섭
뮤지컬 <위키드>의 글린다와 엘파바 / 사진. © 이진섭
[뮤지컬 <위키드> 예고편]


[영화 <위키드> 예고편]


런던=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