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성조기 파드되’.  ⓒ김윤식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성조기 파드되’. ⓒ김윤식
갈라는 명작의 일부를 발췌해 꾸민 무대다. 종합 선물세트 같아서 장단점이 명확하다. 누구나 즐길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이지만 대단원을 향해 가는 긴장감을 맛보기가 어렵다. 발레 갈라도 그렇다.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가 내한 갈라 공연을 선보이겠다고 했을 때 고전 발레의 하이라이트를 짜깁기해 색다른 모습을 제시할 수 있겠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던 이유다.

지난 9~10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펼쳐진 ABT 갈라는 ‘확실한 한 방’을 선사해줬다. ‘더 나잇 인 뉴욕’이라는 제목을 달고 무대에 등장한 무용수들이 자유로움과 열정으로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발레리노들은 단단한 코어 근육을 자랑하며 용수철처럼 뛰어올랐고, 중심축이 흔들리지 않게 착지했다. 격동적으로 춤을 추다가 어느 한순간 정지화면처럼 온몸의 근육을 꽉 조여 멈추는 안무 구성도 신선했다. 하늘하늘, 흐르는 물처럼 움직임을 이어가는 유럽식 발레에 익숙한 발레 팬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안겨준 건 확실해 보였다.

백미는 1부의 마지막인 ‘성조기 파드되’였다. 안무가 조지 발란신이 만든 작품으로 높은 저작권료 때문에 국내에서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서양인치고는 작은 두 남녀 무용수가 미국 군가에 맞춰 등장했는데 놀라울 정도의 무대 장악력을 보였다.

발레리노 제이크 록샌더는 갈라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개척자 정신을 담고 있는 뉴욕이란 도시를 발레로 전달하는 데 사력을 다했다. 윙크와 깜찍한 경례 같은 무대 매너와 함께 힘찬 도약과 손끝 발끝까지 터져나가는 에너지를 모두 보여줬다. 마치 발에 스프링이 달린 듯한 모양새로 군가의 박자를 가지고 노는 듯했다. 파트너인 발레리나 엘리자베스 베이어 역시 단신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고 유연한 팔다리 동작과 현란한 스텝을 펼쳐 무대가 꽉 차게 느껴졌다.

즐겁고 신나는 무대 중간중간 고전 발레의 하이라이트가 채워졌다. 수석무용수 클로이 미셸딘이 보여준 백조의 호수 ‘흑조 파드되’, 최근 무용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코치로 나서며 이름을 알린 발레리노 한성우의 지젤 속 파드되는 고전미를 챙기면서도 ABT만의 스타일을 입혔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