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대통령의 골프 외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집권 1기 첫해인 2017년 11월 한국 국회에서 연설했을 때다. 한국이 거둔 성공 사례를 열거하다가 갑자기 화제를 골프로 돌렸다. 그해 7월 본인 소유의 골프장에서 열린 US여자오픈에서 한국 선수들의 성적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박성현이 우승했고, 10위 내 8명, 1~4위를 모조리 한국 여자 골퍼가 휩쓸었다.

트럼프의 국회 연설 뒤 저녁에는 청와대에서 환영 만찬이 있었다. 당신이 청와대 참모라면 만찬장에 누굴 초청하겠는가.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록 골프를 치지 못하더라도, LPGA에서 활약하는 우리 여자 골퍼들을 초대했다면 그야말로 얘깃거리가 넘쳐나는 만찬장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자리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참석했고, 만찬 메뉴에는 이른바 ‘독도새우’가 올랐다. 386 운동권 출신 참모들이 국빈이 아니라 국내 지지자를 겨냥한 행사 기획을 한 것이다.

트럼프는 방한 직전 일본을 방문해서는 아베 신조 총리와 골프를 쳤다. 아베가 트럼프와 페이스를 맞추려고 벙커에서 황급히 나오다가 뒤로 벌러덩 넘어져 벙커 안으로 데굴데굴 구른 그 우스운 모습이 이때다. 아베는 세간의 조롱에도 트럼프 재임 기간 중 총 다섯 번 골프 회동을 했다. 하루 세끼를 함께하면서 27홀을 돈 적도 있다. 트럼프가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PGA대회에서 우승한 아오키 이사오의 퍼팅 실력을 칭찬하자, 그를 끼워서도 같이 쳤다. 아베는 트럼프 당선 9일 만에 황금 혼마 골프 세트를 싸 들고 뉴욕 트럼프타워로 찾아간 사람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8년 만에 골프채를 다시 잡고 골프 연습에 나섰다고 한다. 아베가 트럼프와 ‘골프 도모다치(友達·친구)’가 된 것처럼 골프를 통해 트럼프와 케미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2010년 대검 중수2과장이 된 후 거의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의 풍채를 보면 장타자일 듯싶다. 아오키의 회고에 따르면 트럼프와 아베는 공을 친 뒤 곧바로 카트로 들어가 밀담을 이어가더라는 것이다. 아베는 트럼프와 전화 회담을 포함해 총 40회 이상의 정상회담을 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