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경기부양책 '신중 모드'…현지 전문가에게 들어보니 [양병훈의 해외주식 꿀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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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질 성장' 추구하겠다는 中 정부
자산 거품 막고 소득 올리기 위한 것
반대 없어 내부 검증 못하는 건 약점
자산 거품 막고 소득 올리기 위한 것
반대 없어 내부 검증 못하는 건 약점
해외 투자의 길잡이가 되겠습니다. 해외 증시에 대한 최근 이슈, 전문가 견해, 유용한 자료 등 꿀팁을 전합니다.
미국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을 때 정부가 찍어낸 채권을 중앙은행(Fed)이 인수하고, 정부가 그 돈으로 확장 재정정책을 집행해 경기를 부양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수요를 만들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서였죠. 최근 중국도 극심한 경기 침체에 시달리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이런 대규모 양적완화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9월부터 여러 차례 경기 부양 조치를 내놨지만 대부분 지급준비율 인하 등 통화정책을 내놓는 데서 그쳤습니다. 정부가 직접 돈을 푸는 재정정책은 "하겠다"고 말만 하고 구체적인 조치를 내놓은 적은 없었습니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이어서 그런 정책을 하기 수월했던 면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중국의 낮은 물가 상승률을 보면 기축통화국이 아닌 중국도 확장 재정정책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지난 6~8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중국의 의회격)에서도 중국 정부의 이런 기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지방정부의 '특별채권 한도'가 전인대 상무위의 규제를 받습니다. 전인대 상무위가 이 지방정부 특별채권 한도를 기존 29조5200억위안에서 35조5200억위안으로 6조위안 늘려주기로 했는데(2024~2026년 동안 매년 2조위안씩 집행), 이 증액된 돈은 대부분 '지방정부금융기구(LGFV)의 부채 차환'에 이용될 예정입니다. 이로써 지방정부가 부채 차환에 이용할 수 있는 돈은 기존에 있던 4조위안(2024~2028년 동안 매년 0.8조위안씩 집행)에 이번 6조위안을 더해 모두 10조위안으로 늘었습니다. 전인대 상무위가 "증액된 부채 한도를 차환에만 이용해야 한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일차적인 목적은 차환"이라고 했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이를 다른 용도로 많이 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이 차환은 LGFV의 빚이었던 걸 지방정부의 빚으로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중국에서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정한 부채 한도 이상의 돈을 조달하기 위해 법인 형태의 LGFV를 설립했습니다. LGFV는 우리나라의 '도시개발공사'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LGFV가 조달한 돈은 중앙정부 부채 한도 규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정부는 LGFV로 막대한 돈을 조달해 방만하게 부동산 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LGFV가 조달한 돈의 지급을 지방정부가 암묵적으로 보증했기 때문에,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LGFV가 돈을 못 갚을 위기에 처하자 지방정부까지 재정 위기를 맞게 된 거죠. 중앙 정부가 추진하는 부채 차환은 이 LGFV의 부채를 아예 명시적인 지방정부 부채로 돌려 양성화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이제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중국 정부는 왜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확장 재정정책을 내놓지 않을까요? 확장 재정정책의 가장 큰 부작용은 물가 상승인데, 중국은 현재 경기 침체 상황이라 이 위험도 크지 않은데 말이죠. 우리가 평소 듣는 얘기는 주로 미국과 국내 전문가들의 얘기입니다. 이 전문가들은 중국이 적극적 재정 정책을 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냅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사정과 의도를 잘 아는 현지 언론과 전문가의 주장은 다릅니다. 이들은 중국 경제가 거품을 만들지 않는 '제3의 길'로 들어서야 하고, 확장 재정정책을 억제하는 지금 중국 정부의 조치가 그 방향에 부합한다고 설명합니다. 구체적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중국일보가 지난 1일 게재한 '중국사회과학원 전문가들의 해석 : 소득을 늘리지 않는 한 소비 확대 여지는 제한된다'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잘 담겨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 장빈 중국사회과학원 선임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경기 대응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 전체의 소득수준 향상"이라며 "올 3분기 소비 경향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됐지만, 소득이 늘지 않아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소득 수준을 올리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중국사회과학원은 중국 국무원 소속 연구기관입니다. 그는 "최근 정부의 정책은 소득 증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중국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는 걸까요. 이에 대한 중국 언론과 연구기관의 주장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경제 정책이 양적완화 대신 혁신과 효율성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둘째, 사람들에게 양질의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합니다. 셋째, 중소기업을 지원해 이들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에게 더 나은 급여가 지급되도록 해야 합니다. 넷째, 중·저소득자의 세금을 줄이고 사회보장 시스템을 강화해야 합니다. 다섯째, 도시와 농촌의 균형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조치를 통해 중국 사람들의 소득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중국을 자산 거품이 주도하는 경제가 아닌, 내실 있는 경제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중국 언론들은 이처럼 '확장 재정정책을 억제하는 중국 정부의 방침'에 대해 낙관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일보는 지난달 9일 게재한 '중국 경제는 고품질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논평에서 "최근 중국은 일련의 경기 부양 정책에 힘입어 모든 분야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최근 중국 증시가 급등했고 관광 관련 수요가 늘었으며, 국경절 연휴(지난달 1~7일) 동안 베이징의 관광객 수와 관광 수입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정산제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장관급)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발전 추세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 경제 발전의 기본은 변하지 않았다"며 "큰 시장 잠재력과 강력한 경제 탄력성 등 우호적인 조건 역시 유효하다"고 했습니다.
미국 외교 전문 매체 ' 더 디플로맷'이 지난해 8월 게재한 논평 '중국이 경기 부양책을 꺼내지 않는 이유'도 "중국 정부는 최근의 경기 부진을 새로운 경제 체제로 가는 길에 겪어야 하는 조정의 시기로 보고 있다"며 "중국 정부는 성장 우선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 논평은 중국 정부가 설정한 이러한 발전 노선에는 '권력을 균열 없이 유지하고자 하는 정부의 속내'가 있다고 봤는데요. 이 논평은 "중국 경제가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따른 빠른 성장을 지속한다면, 중국 내에서 공산당의 지배를 용인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질 것"이라며 "경제 확장을 막는 것은 중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의 특징"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 증시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국내 증권가에는 "추가 부양책이 나올 수 있으니 내년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까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신승웅 신한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다음 달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전반적인 정책 기조를 확인하고 내년 3월 양회에서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할 것"이라며 "GDP(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파격적으로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중국 정부의 추가 부양책 기대가 지금까지 번번이 어긋났는데, 내년 3월이라고 상황이 달라질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중국 정부의 증시 부양 능력을 회의적으로 보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도널드 로우 홍콩과학기술대 교수는 지난 4일 닛케이아시아에 기고한 글 '중국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기 때문에 주식시장이 상승할 수 없다'에서 "다수의 중국 내 전문가들은 어떻게 해서든 중국 정부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결론을 끼워 맞춘다"며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국 정부는 종종 잘못된 의사 결정을 내리고, 이 때문에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던 전문가들도 증시 강세 전망을 내다가 시장을 예측하는 데 실패한다"고 말했습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