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규제가 줄어들며 한국 작가들의 국제무대 진출이 늘어날 것이란 해외 미술계의 전망이 나왔다. 정부가 올 하반기 미술진흥법과 문화유산법을 각각 제·개정하면서 발이 풀린 한국 작가들의 '몸값'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영미권 미술전문 매체 아트뉴스페이퍼는 최근 한국의 미술시장 규제 완화를 두고 "한국 예술가들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기회"라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어 "그동안 한국 내에서만 활동하던 작가들한테도 해외 진출의 발판이 마련됐다"며 "조만한 한국 작가들의 새로운 경매 기록이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2024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최혁 기자
2024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최혁 기자
이러한 분석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1946년 이후 제작된 작품의 자유로운 국외 반출과 수출이 가능해진 게 그중 하나다. 지난 7월 개정된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문화유산법) 시행령'을 통해서다. 개정된 법령에 따르면 이중섭(1916~1956)·박수근(1914~1965) 등 그동안 엄격한 관리 대상이던 거장들의 말년 작품 일부도 해외 반출·전시·거래가 허용된다.

그동안 '제작된 후 50년 이상이 지난 작품'(1970년대 중반 이전 제작된 작품) 중 예술적·학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은 일반동산문화유산으로 분류됐다. 일단 일반동산문화유산이 되면 국외 반출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이번 법령 개정으로 규제 대상이 되는 일반동산문화유산의 인정 범위가 20년가량 줄며 숨통이 트인 셈이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작품 약 200점의 국외 반출이 금지됐다. 지난해 프리즈 런던의 '마스터스' 섹션에서 고(故) 곽인식 작가의 1962년 작품의 출품이 무산된 것이 단적인 예다. 한 해외 미술계 관계자는 “규제 완화로 인해 보다 많은 한국 작가들이 글로벌 전시회에 참가해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2024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이 개막한 지난 9월 4일 저녁 서울 종로 삼청동 미술관 일대가 전시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김범준 기자
2024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이 개막한 지난 9월 4일 저녁 서울 종로 삼청동 미술관 일대가 전시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김범준 기자
한국 미술시장 낙관론의 나머지 한 축에는 '미술진흥법'이 있다. 미술의 창작과 유통 및 향유를 촉진한다는 목표로 지난 7월 시행됐다. 2027년 도입을 앞둔 '추급권'이 그중 하나로, 미술품을 재판매할 때마다 판매가의 일정 비율을 작가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의 가격 상승분에 대한 작가의 권리를 보장하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국내 미술시장의 투명성이 제고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소비자가 미술품을 구매할 때 작가명과 구매처, 보증내용 등이 담긴 진품 증명서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서다. 그동안 국내 미술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거론됐던 위작 문제나 비전문적인 감정 절차를 개선하기 위한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법의 실효성을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미국 뉴욕의 미술 컨설팅 업체 '정앤코'를 공동 설립한 정지연 아트 어드바이저는 “미술품 추급권이 실제로 시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갤러리와 경매사 등 미술품 판매자들이 장부 공개를 주저하거나, 심지어 법적 분쟁을 벌일 수도 있다"고 했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