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서 사리가 나온 개가 있었다고? 조선의 애완견 이야기 [서평]
한국 근대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는 이광수의 <무정>엔 여주인공 영채를 지키는 개가 등장한다. 고아에 가까운 처지가 돼 외가에 의탁한 영채는 심한 구박을 받고 결국 가출하는데, 이때 개가 영채를 따랐다. 영채가 악한에게 붙잡혀 욕을 당하게 됐을 때 이 개가 영채를 위해 악한과 처절하게 싸우다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노파는 "개가 도리어 사람보다 낫지"하며 눈물을 흘린다.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엔 사람보다 나은 개의 이야기가 모여 있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이 남긴 개에 관한 이야기 31편을 모았다. 사람을 사랑한 개, 개를 사랑한 사람의 이야기가 섞여 있다.

우리 조상들은 개의 감동적이거나 올바른 행동을 통해 잘못된 인간의 행위를 꾸짖는 교훈적 성격의 글을 많이 썼다. 주인을 화재에서 구하고 죽은 개 이야기도 있고, 어미 개가 죽자 따라 죽은 새끼 개의 이야기도 있다. 다른 개의 새끼에게 젖을 나눠 먹이는 개, 불심이 있어 몸에서 사리가 나오는 개 등의 일화도 있다.

개 짖는 소리에 관한 흥미로운 글도 있다. 조선 시대 문인 박종경은 '개를 용서하다'란 글을 썼다. 그가 집에서 키운 개 두 마리는 피부병으로 몰골이 흉한 데다 아무렇게나 똥을 싸는 사고뭉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박종경이 병이 났는데, 개들이 짖어대는 통에 숙면을 취할 수 없어 병이 더 심해질 지경이었다.
몸에서 사리가 나온 개가 있었다고? 조선의 애완견 이야기 [서평]
화가 난 박종경은 하인을 불러 내일 아침 개를 잡아 죽이라고 했다가, 문득 다시 생각에 잠겼다. "개가 짖는 것은 개의 본성이다. 저놈이 제 본성을 따르는데 내가 죽인다면, 이는 내가 동물의 본성을 완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어찌 옳은 일이겠나!" 깨달음을 얻은 박종경은 개를 죽이지 말라 하고 개를 용서하는 시를 지었다.

개를 정성들여 키우는 방법을 기록한 글도 있다. 19세기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 구변증설'에서 개 키우는 여러 방법을 소개해놨다. 개가 여위고 힘이 없으면 미꾸라지 한두 마리를 먹여주면 된다. 생 흑임자를 개 발에 바르고 비단으로 싸 주면 천 리를 갈 수 있고, 개에 파리가 붙을 땐 향유를 두루 발라주면 된다. 오늘날 개를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현대인에게 개는 애완을 넘어 반려의 존재가 됐다. 공원 산책길엔 유모차보다 자주 눈에 띄는 게 '개모차'다. 사람보다 나은 개를 기록한 조선시대 문인의 마음은 사람이 개만 못한 현실과 스스로의 행실을 성찰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저자는 개를 사랑만 할 것이 아니라 사람답지 못한, 개보다도 못한 처신이 없는지 자신을 돌아봤으면 한다고 강조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