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유재하 /사진=키위미디어그룹 제공
고(故) 유재하 /사진=키위미디어그룹 제공
"말을 잊은 내 하늘은 별 같은 그대 눈빛~ 별 같은 그대 미소~"

고(故) 유재하가 신곡을 발표했다. 여운이 남는 깊이 있는 목소리에 섬세한 감성까지 분명 그가 맞다. 1987년 하늘의 별이 된 유재하가 어떻게 2024년 새로운 노래 '별 같은 그대 눈빛'을 녹음할 수 있었을까.

음원 기획사 측이 공개한 앨범 소개에 따르면 '별 같은 그대 눈빛'은 1982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유재하의 목소리를 복원해 완성됐다.

당시 대학생 유재하는 한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 초대받았고, 방송 여건상 피아노를 치며 자작곡을 부를 수 없어 기타 반주로 부를 노래를 찾다가 밴드 '레모네이드' 멤버 유혁, 유욱상 형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타리스트 유혁은 밴드의 키보드 주자였던 한석우가 작곡한 이 곡을 기타로 편곡해 유재하에게 전화로 가르쳐 줬다.

음원으로 부활한 '별 같은 그대 눈빛'은 라디오에서 이 곡을 라이브로 부르는 유재하의 목소리를 카세트테이프로 녹음한 것을 살려낸 것이다. 여기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이 활용됐다. 다만 AI는 기타와 유재하 목소리를 분리하는 용도로만 쓰였으며, 새로운 목소리를 창출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분리된 유재하의 목소리에 기타 반주만 유혁이 새롭게 연주해 녹음했다. 그렇게 '가짜'가 아닌 '진짜' 유재하의 신곡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최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음악 작업에 AI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유재하의 사례에 앞서 같은 방식으로 비틀즈의 신곡 '나우 앤드 덴(Now And Then)'이 발매돼 화제가 됐다. 이 곡은 고인이 된 존 레논이 1970년대 말 제작한 데모 테이프에 들어있던 미공개 녹음본으로 존재했다. 존 레논이 사망한 뒤 곡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기술적으로 피아노 연주와 존 레논의 보컬을 분리하기 어려워 발매되지 않았다.

그러다 2021년 머신 러닝 기술로 악기와 보컬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고, AI 기술이 더해지면서 존 레논의 보컬에 조지 해리슨,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가 각자의 파트를 추가, 비틀즈는 공식적으로 해체한 지 50년 만에 신곡을 발표하게 됐다.

이 곡은 그래미 시상식 올해의 레코드, 록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랐다. 당초 그래미는 "AI로만 만든 음악은 부적격하다"며 인간 창작의 영역을 중시했는데, 이번 방식은 그래미의 관련 규정 내에서 AI를 활용해 노미네이트될 수 있었다. 그래미는 AI 소재의 '요소'가 포함된 작품은 '해당 부문에서 자격이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음악계에서는 몇 년 새 AI 창작이 화두로 떠올랐다. AI가 만든 곡에 대한 저작권을 인간 창작물과 동일하게 인정해줘야 하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인간의 창작 영역을 보정하는 수준에서 AI를 활용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세븐틴, 에스파가 AI로 생성한 장면을 삽입해 뮤직비디오를 만든 데 이어 고인이 된 유재하의 목소리로 녹음된 신곡까지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AI로 만들어진 곡들이 광고 음악으로 삽입되고 있다.

작곡가 김형석은 지난 4월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크리에이터가 완벽해야 했는데 이제 그게 의미가 없다. 더 솔직하게 곡을 쓰는 게 중요한 무기가 아닐까 싶다"면서 "창작자들 입장에서 과연 AI는 우리의 적인가를 생각해 보면 사실 CG, 음악, 시나리오, 웹툰 작업 모든 걸 AI가 한다. 이걸 대척점에서 보는 게 아니라 확대됐다고 볼 수도 있다. 이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고 이용해서 진정성과 결합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세븐틴 우지 역시 AI 작사·작곡을 연습해 봤다면서 "다가오는 기술의 발전을 불평만 하기보다는 같이 발맞춰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연습도 해보고, 단점도 찾아보고, 그 속에서 장점은 무엇인지, 또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에서 우리 고유의 아이덴티티는 어떻게 지킬 것인지 매일 같이 고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