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대부분 그들 몫이었다. 미국 등 자유주의 진영 중심의 '제1세계', 소련의 계보를 이은 '제2세계'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 갈등 등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전 세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혀끝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제3세계 시민들의 입장은 어떨까. 전쟁과 혁명, 포스트 식민주의 사회를 직접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시가 열렸다. 프랑스령 식민지였던 과들루아 출신인 토미야스 라당, 조국 이란에서 쫓겨나 미국에 정착한 작가 니키 노주미가 그 주인공이다.
니키 노주미, '총과 꽃'(1981) /바라캇컨템포러리 제공
니키 노주미, '총과 꽃'(1981) /바라캇컨템포러리 제공
춤으로 승화한 식민지 시대의 아픔

"여기 당신을 위한 이야기가 있다"는 내레이션으로 영상은 시작한다. 바닷가에서 마주친 사내 두 명이 주택가와 버스 정류장, 시청을 오가며 몸싸움을 벌인다. 이들이 다투는 이유는 재산과 출신을 증명하는 한 장의 서류 때문으로 보인다. 막상 둘이 똑같이 '어떤 거대한 힘'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아챈 뒤에야 싸움을 멈추고 화해한다.

화려한 현대무용을 연상케 하는 영상작업은 토미야스 라당(31)의 '라이벌'(2023). 지난 2021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촬영한 작가의 첫 단편영화로, 작가가 직접 무용수로 등장한다. 두 명의 주인공은 각각 작가의 고향 과들루프를 구성하는 두 개의 큰 섬인 바스테르와 그랑테르를 상징한다.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과들루프의 상처를 빗댄 것이다.
토미야스 라당 '라이벌(RIVÂL)'(2023) /에스더쉬퍼 제공
토미야스 라당 '라이벌(RIVÂL)'(2023) /에스더쉬퍼 제공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려면 과들루프의 역사를 알고 가는 편이 좋다. 과들루프는 대서양 카리브해의 서인도제도에 있는 섬 나라다. 1493년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된 뒤 사탕수수와 카카오 재배지로서 삼각무역의 한축을 담당했다. 영국과 스웨덴 등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현재 프랑스의 해외 영토로 편입됐다.

서울 이태원동 에스더쉬퍼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작가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다. 전시 제목은 '올드 소울-뉴 소울(오래된 영혼-새로운 영혼)'로 여러 세대에 걸친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뜻이다. 전시장 1층에 배치된 두 점의 타악기 나뭇조각이 이를 보여준다. 할아버지 대로부터 3대째 목수로 활동하고 있다는 작가의 가족 내력을 표현한 작품이다.
토미야스 라당 '올드 소울 - 뉴 소울' 전시 전경. /에스더쉬퍼 제공
토미야스 라당 '올드 소울 - 뉴 소울' 전시 전경. /에스더쉬퍼 제공
그의 작업은 카리브해의 전통 춤 의식에 기반한다. 2~3층에 전시된 5점의 회화도 춤추는 인물을 묘사한다. 작가의 자매와 어머니 등 주변 인물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작업할 때도 마치 춤을 추듯 밑그림 없이 즉석에서 그리는 방식을 고수한다고. 그는 "임산부의 태동부터 시작하는 몸짓은 인간이 처음 경험하는 언어"라며 "춤을 통해 과거에서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토미야스 라당 작가 프로필 이미지. © Ibra Wane /에스더쉬퍼 제공
토미야스 라당 작가 프로필 이미지. © Ibra Wane /에스더쉬퍼 제공
작가한테 춤은 해방의 몸짓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회화 '전복, 전율, 해방'(2024)에선 하얀 가면을 벗은 두 사람이 등장한다.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서구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쓴 '가짜 가면'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를 암시한다.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영상작업 '라이벌'이 겹쳐 보인다.

전시된 모든 작품의 공통점은 하나. 아슬아슬해 보이는 동작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기 위해선 우리 마음에 상처를 남긴 폭력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14일까지다.
토미야스 라당, '전복, 전율, 해방(Chaviré, Soukouss, Liberation)'(2024) /에스더쉬퍼 제공
토미야스 라당, '전복, 전율, 해방(Chaviré, Soukouss, Liberation)'(2024) /에스더쉬퍼 제공
꽃 대신 총을 몰고 온 혁명의 상처

서울 소격동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선 니키 노주미(82)의 개인전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가 열리고 있다. 1942년 이란에서 태어난 작가는 40여년간 권력과 폭력의 관계를 빗댄 대형 회화를 그려왔다. 이란혁명 등 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미국으로 이민간 뒤 마이애미에서 제작한 '모노타이프' 60여점을 세계 최초로 공개한 자리다.

모노타이프는 물감을 떨어뜨린 금속 또는 석판 위에 종이를 덮어 인쇄하는 표현 기법이다. 물감이 금세 마르는 탓에 즉흥적이거나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오는 게 묘미다. 작가는 미국 유학시절인 1976년 모노타이프를 처음 접했다. 새로운 기법을 물색하던 젊은 시절의 호기심을 충족하고, 조국의 정치 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니키 노주미,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1976) /바라캇컨템포러리 제공
니키 노주미,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1976) /바라캇컨템포러리 제공
전시의 분기점이 되는 사건은 1979년 이란혁명이다. 기존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이슬람공화국을 만든 혁명이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1976)는 혁명의 기운이 임박한 가운데 탄생한 작가의 첫 번째 모노타이프다. 늦은 밤 거리에서 붉은 장미를 지탱하고 있는 민초를 형상화했다. 붉은 장미는 이란혁명을 상징하는 꽃이다.

희망찬 제목과 달리 작품이 풍기는 인상은 위태롭다. 실제로 혁명의 결실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새로 들어선 체제에서 압제가 오히려 심해졌기 때문이다. 1980년 작가가 이란 테헤란 현대미술관에서 연 회고전이 폐쇄된 사건이 단적인 예다. 작가는 혁명의 기록을 담은 회고전을 열었는데, 현지 언론으로부터 '반(反)혁명적'이라며 뭇매를 맞았다.
'니키 노주미: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 전시 전경. /바라캇컨템포러리 제공
'니키 노주미: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 전시 전경. /바라캇컨템포러리 제공
작가는 같은해 9월 22일 도망치듯 몸만 빠져나왔다. 불과 몇시간 뒤 그가 이용한 메흐라바드 공항을 이라크가 폭격하며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혁명 당시만 하더라도 이란은 민주화를 앞둔 희망에 가득 찼다. 하지만 혁명 이후 찾아온 건 꽃이 아니라 칼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작 중 3점을 제외한 나머지는 작가가 미국 마이애미에 정착한 뒤 남긴 작품이다. 이란혁명 이전에 제작한 작품이 대부분 소실된 영향이 컸다. 상실감에 빠진 작가는 고향의 풍경과 혁명의 기록, 마이애미의 일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로세로 14·17인치 프레스로 만든 여러장의 모노타이프를 이어 대형 판화를 제작하는 등 새로운 기법도 시도했다.
니키 노주미, '푸른 말'(1981) /바라캇컨템포러리 제공
니키 노주미, '푸른 말'(1981) /바라캇컨템포러리 제공
전시장 지하 1층에 걸린 '푸른 말'(1981) 등 대작들이 이때 태어났다. 총 36장의 모노타이프를 연결해 하나의 화면을 구상했다. 칠흑처럼 어두운 배경에 그려진 건 푸른 빛의 말 한마리. 용맹·권위 등 고대 페르시아부터 이란의 정체성을 상징한 동물이다.

암담한 현실에서도 달리는 말을 그리며 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평화, 어떠한 장애물 없이 일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자유"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12일까지.
니키 노주미 작가. ⓒNicky Nodjoumi /바라칸컨템포러리 제공
니키 노주미 작가. ⓒNicky Nodjoumi /바라칸컨템포러리 제공
안시욱 기자